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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과 한국사회의 단면마늘과 생강 2010. 2. 22. 10:23반응형
목욕탕에 한 쪽 몸이 마비된 중년 여인이 들어왔다.
눈과 입술 근육도 일그러진, 우울한 얼굴빛의 여인 곁에는 딸로 보이는 30대 후반의 여인이 부축을 받으며 따라다니고 있었다.
젊은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년 여인의 몸을 닦아주며 신경을 쓰고 있었다. 머리도 감기고 발가락까지 주물러서 혈액순환을 돕고 있는 정경은 행여 굳어진 몸이 기적처럼 풀리지 않을까 기도하는 것 같아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바깥 나들이도 제대로 못했을 게 분명한데 가지 않는다며
가벼운 실랑이가 오갔을까.구경도 할 겸 시설이 좋아진 목욕탕을 가자고 용기를
냈을지도...맥반석 사우나, 옥 사우나, 쑥 사우나, 수정 사우나 등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 새로 태어난 목욕탕은 건강 센터나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몸이 일그러진 여인도 기를 받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솔깃한 마음에 따라나섰을지도 몰랐다.
목욕문화도 이제는 작은 변화를 거쳐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시설이나 분위기가 호텔 부럽지 않은 곳에서 잠까지 잘 수 있다.
휴게실은 물론 어지간한 운동시설도 갖춰져 있다.
쉬고 잡담도 나누고 가족끼리 들러서 땀을 빼고 좋은 기를 몸에 받아 충전하는 기분으로 앉아 즐긴다.
이런 고급 시설을 보면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의 그야말로
엽기적이었던 목욕탕 나들이를 떠올린다.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욕실이 없어서 겨울이면 목욕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치르는 큰 행사였다.
온 가족이 저마다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서는데 가관이었던 일은 때가 잘 빠진다는 핑게로 빨래까지 챙겨 가지고 가서 서너 시간 이상 진을 빼는 바람에 목욕탕은 늘 자리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빨래감을 가져오지 못하게 종업원이 바구니를
열어보라며 감시하기도 했다.이제는 그런 엽기 목욕 가족도 가버린 20세기처럼 가슴에 남아 추억으로 흔들릴 뿐이다. 목욕탕에서 딸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여인을 보며 나는 언제나 어머니에게 등을 맡겼던 아버지를
생각한다.아버지는 목욕탕을 한 번도 가지 못하셨다. 왼쪽 다리가 없어서 허벅지까지 오는 의족을 달고 사셨던 아버지는 목욕탕 구경은 아마 다시 태어나는 세상에서 꿈꿔야 하지 않았을까.
어느 해 여름인가 우리 식구는 아버지와 함께 강가로 놀러
나갔다.강 한 쪽에 솥을 걸어 닭도 삶고 수박, 참외를 먹으면서 더위를 식혔는데, 아버지는 모처럼 물을 만나서 좋았는지 의족을 풀고 윗통까지 벗은 다음 물속에 들어앉아 몸을 씻었다.
어머니도 당연하게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고 수건으로 잘 닦아준 다음 목발을 주어 일으켜 세웠는데 옆자리에 놀러와 자리를 잡으려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수군거리며 놀라는 눈치였다.
우리 식구들을 마치 외계인쯤이나 된다는 듯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물론 다리가 없어서 훌쭉한 파자마의 한 쪽을 말아올려 허리춤에 넣고 반나체로 목발을 짚고 서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 마주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겠지만 목욕 한번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점점 호화로워지는 목욕시설의 풀 코스를 즐길 수 있는, 휠체어가 있는 목욕탕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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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르다는 생각이 바로 틀리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삶의 자세는 우리의 전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럽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다른 무엇인가를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획일화와 항상 동일성을 강조한 문화탓인지도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다양한 문화체험의 부재와 폐쇄적인 사고방식이그 원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세계와와 창조성을 외쳐도 두뇌의 구조가 다양성을 인정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면 우리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을 것이다.권남희/스테파니아 수필가 (경향잡지6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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