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세상사 2009. 11. 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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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손수건


오천석 번역, 샘터사 발행, 1974년판에서 발췌
실제로 있던 일임. 아마도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기사를 번역한 것 같음.
국내 방송사도(테마게임였던 것 같음) 이 주제를 가지고 방송한 적이 있어습니다.

남쪽으로 가는 그 버스 정류소는 언제나 붐비었다. 생기찬 모습의 젊은 남녀 세 쌍이 까불거리며 샌드위치와 포도주를 넣은 주머니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플로리다주에서도 이름 높은 포트 라우더데일이라는 해변으로 가는 버스였다. 승객이 모두 오르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황금빛 사장(沙場)과 잘게 부서져 오는 하얀 파도를 향하여. 차장 밖으로 추위 속에 움츠러든 회색의 뉴욕 시가가 뒤로 뒤로 미끄러져 흘러갔다.

세 쌍의 남녀들은 알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흥분 때문에 계속 웃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들도 뉴저어지주를 지나갈 무렵쯤 되어서는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회복하여 조용해져 가고 있었다.

그들의 앞자리에는 몸에 잘 맞지 않는 허술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묵묵히 앞쪽만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먼지로 더러워진 얼굴만으로는 나이가 어림되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굳게 깨물고 뒤에서 조잘거리는 그 남녀들이 무안해질 만큼 한사코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밤이 깊어서 버스는 위싱턴 교외의 어떤 음식점 앞에 멈추었다. 승객들은 다투어 버스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채웠다. 단 한사람 그 돌부처 같은 사내만이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그의 거동에 점차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은 멋대로 그에 대한 여러 가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배를 타던 선장일까, 아니면 아내와 싸우고 집에서 도망쳐 나오는 사람?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 병사일까?

식사를 마친 승객들을 태우고 버스가 워싱턴을 떠날 때 일행 중의 용감한 여자가 그 남자의 옆자리에 가 않아 말을 걸었다. 그녀는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 "우리는 플로리다로 가는 길인데 처음 가는 길이거든요. 듣자니까 그렇게도 경치가 멋지다면서요?"하고 명랑하게 물었다.

"그렇지요" 한참만에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야릇한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어렸다. 잃어버렸던 옛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이었을까?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자신을 얻은 젊은 여자가 그에게 다시 말했다.

"고맙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여자가 컵에 따라 주는 포도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완강한 침묵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여자가 다시 일행 가운데로 돌아가자 그는 잠을 청하려는 듯 등을 뒤로 기대며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었다. 버스가 다시 음식점 앞에 섰다. 이번에는 그 사내도 승객들을 따라 식사를 하러 내려왔다. 어젯밤 말을 붙였던 그 젊은 여자가 그에게 자기들과 자리를 같이 하자고 제의했다. 그는 몹시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마음이 뒤숭숭한 사람이 으레 그러듯 연신 담배를 피워 물곤 하였다. 젊은이들은 즐거움에 들떠 해변 모래사장에서의 멋진 야영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리 높여 재잘거렸다.

식사를 끝내고 모두들 다시 버스에 오르자 그 젊은 여자가 또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사내는 그 젊은 여자의 호기심에 두 손을 들었다는 듯 괴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자기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내의 이름은 빙고, 지난 4년 동안 뉴욕의 형무소에서 보내다가 이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결혼은 하셨던가요?" 젊은 여자가 혀를 끌끌 차고 나서 물었다.

"잘 모르겠소"

"잘 모르다니요?" 그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무소에 있는 동안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냈었소" 그는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고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 할 형평인 만큼 만일 그렇게 오래도록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든지, 아이들이 자꾸 아버지를 찾는다든지, 혹은 혼자 사는 것이 괴롭고 고생이 된다면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재혼해도 좋다고 말이오. 그 여자는 훌륭한 여인이오. 나를 그냥 잊어버려 달라고 썼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말이오. 그 뒤로 아내는 편지를 하지 않았소. 3년 반 동안이나……"

"그런데 지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란 말이죠? 어떻게 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소" 그는 조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사실은 지난주일 가석방 결정이 확실해지자 나는 또 편지를 썼소. 옛날에, 우리는 그때 부른스위크라는 곳에 살았는데, 그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가 한 그루 있소. 나는 편지에서,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붙들어 매어 두라고 말했소. 노란 손수건이 참나무에 걸려 있으면 내가 버스에 내려 집으로 갈 것이라고. 만일 재혼을 했거나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라고, 나도 잊겠다고 썼소.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건 가 버리는 거요"

여자는 깜짝 놀랐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일행들도 빙고가
보여주는 아내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이제 잠시 후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서 지대한 호기심을 보였다. 마치 자기들의 일이기나 한 것처럼 모두들 흥분에 들떠 제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폈다.

꾸겨지고 낡아빠진 빙고의 사진 속에는 부인과 세 자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부인은 비록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 속에는 착한 마음과 얌전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었다. 사진 속의 어린애들은 아직 어렸다.

버스는 계속 달렸다. 마침내 이정표는 부른스위크가 20여마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모두 오른쪽 창문 옆자리로 다가붙어 빙고가 말한 그 커다란 참나무가 나타나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을
기다렸다.

이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져 부른스위크가 가까워 올수록 버스 안에는 뒤숭숭한 설레임의 공기가 흘렀다. 그리고 이상스런 정적이 버스 안을 채웠다. 어두컴컴한 침묵의 구름에 휩싸인 듯한 버스 안의 분위기는 마치 그 빙고라는 사나이가 집을 비운 그 잃어버린 세월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빙고는 그대로 조용히 안자 있었다.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얼굴을 돌려 창 밖을 내다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굳어진 그 얼굴에서 누구라도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난 그 실망의 순간을 대비하여 마음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마을과의 거리는 20마일에서 15마일로. 다시 10마일로 점점 가까워졌다.

물을 끼얹은 듯한 버스 안의 정적은 계속되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젊은이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치며 춤을 추듯 뛰었다.

그때까지도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사람뿐이었다. 그는 멍하니 넋 잃은 사람처럼 차장 밖 멀리 보이는 참나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무는, 그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여 있었다. 20개, 30개, 아니 수백개가 바람 속에 환영의 깃발로 마구 물결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박수를 치며 소리치고 있는 동안, 늙은 전과자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앞문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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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입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에 좌절하고 실망하고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내 팽개치고 있다면,다시 무엇인가를 해보세요..죽을 각오로 한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성실함과 정직함으로 무장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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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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