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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격려와 성과급에 매달려 당신은 장애로 영원히 낙오될 수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보너스가 당신의 것이다.

   칭찬으로 그리고 금전적인 부상으로 열심히 일했던 K양.
   20대 중반부터 성실성과 정교한 일처리에 부처내에서 똑소리 나던
   그녀 칭찬과 성과급에 월차와 휴가는 먼나라 이야기였고, 밤과 낮의
   구별없이 열심히 회사에 출근도장( 주30일 )을 찍어대던 그녀
   언제부터인가 오른쪽 어깨가 뻐근하다.

   처음에는 근육통이라고 생각해서 파스와 스프레이로 해결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떨림과 감각의 무디어짐은 주변의 다른 이들도 
   눈치챌 정도이다.

   열심으로 노력해서 이제 동기중 최연소로 대리가 되었고, 각종 프로
   젝트도 능숙하게 처리하는 그녀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결국, 야간진료가 가능한 신경외과에 가보았다.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큰 병원을 권한다.
   결국, 어쩔수 없이 K양은 대학병원을 찾는다.
   진단은 정밀검사후에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좀 쉬는 것을 의사는
  권하지만, 어림없다. 이번 프로젝트와 완벽하게 마루리하면 그녀의
  인생은 탄탄대로다.
  .
  .
  .
  간신히 이번 프로젝트를 좀 부실하게? 마무리 하고, 병원검사를
   확인하러 같다.  결과는 우측 어깨쪽의 신경의 단절.
   한마디고 오른손을 일반인과 같이 감각적으로 재빠르게 놀릴 수 없고
   무리하면 떨림과 수전증이 유발되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
   .
   그녀가 업무상 상해를 입은 것이다.
   디자이너라는 업무의 특성상 지나치게 쉬지 않고 오른 손으로 마우스
   와 키보드를 힘차게 꾸준히 누르기를 5년여
   그녀의 미세한 어깨신경 중 일부가 끊어지고 약화된 것이다.
.
.
 본인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주기적인 손떨림과 신경질 그리고 기존
  보다 못한 프로젝트안 등이 그녀를 결국 회사와 결별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까지 사용한 K양은 결국 자신의 제대로 된 꿈을 펼치기고 전에 산업전선에서 조기은퇴를 하고 새로운 삶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다. 이는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고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지나친 열심과 과도한 성과에 대한 집착이 스스로의 업무수명을 극단적으로 단축해 놓았다.
절대로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마라.
그 누구도 당신을 이해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오직 당신만이 눈물을 흘릴 뿐이다.


2.누구의 책임인가.
누구는 성과를 챙기고 누구는 설걷이를 하면서 온갖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P군은 회사의 새로운 수입원인 대체에너지 사업에 선봉에 섰다.
사살 대리급인 P군 회사의 새로운 수입원인 대체에너지 사업에 선봉에 선것은 그 전망이 불투명하여 고참 과장급들이 꺼렸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기본적인 설비와 시설 그리고 인력은 배치해 주었지만, 아직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기에 무엇인가 한방을 기대하고 있었다.
잘되면 당연한 것이고 잘못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는 분위기다.

P군은 목숨을 걸고?뛰어서 거래처를 마련하고 대체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각종 세미나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참석하면서 판로개척과 새로운 방향설정에 온 힘을 기울였다.
뜻하지 않고 주변국에서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서 대체에너지에 대한 기대수요가 급증하고 P군의 회사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낸 수소전지에 대한 수요가 기대이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P군이 회사의 대체에너지 관련부서로 온지 3년만에 그의 능력은 인정받아서 본사의 기획실로 영전?하고, 대신 회사입장에서 이제 안정적인 사업망 구축을 위해서 다양한 지원자 중에서 고르고 고른
실무책임자감으로 K과장을 임명한다.
K과장은 대체에너지 관련학과의 석사학위도 소지하고 있는 자타가 공인한 이공계인맥의 선두주자다.
이제 회사는 K과장의 역량을 통해서 대체에너지 사업을 단순히 새로운 수입원이 아닌 회사의 주력사업으로 변모시킬 태세다.

P군에 의해서 막 꽃을 피우고 그 성과를 거두려는 시점에서 투입된 K과장은 상황이 심각함을 서서히 몸소 느끼게 되었다.

시작 당시에는 불모지 였던 대체에너지사업은 이제 조금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고 수소에너지와 태양광 등 다양한 에너지분야로 사업이 다각화되면서 정부나 세계의 관심과 배려도 분산되고 있다.
게다가 후발로 시작한 기업들이 이 회사의 인력에 관심을 갖고 상당수 이직을 하고 있거나 이직을 검토중이다.

기존의 거래처들도 수입처 다각화를 시도하고,
설비들도 3년을 넘기면서 고장과 부작용이 여기저기 눈에 띄게 증대하고 있다.

당연히 인사관리면에서 문제가 유발되고
거래선의 관리문제도 발생되고,
유지보수 비용도 수직상승하면서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서는 항상 K과장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나치게 모든 일과 성과 그리고 설비와 인력에 대한 극한적인 상황까지 몰고간 - 물론 본인은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 P군일까 아니면 K과장일까?  아니면 적정관리에 무심했고, 오로지 가시적인 성과에만 매달린 회사일까?

중요한 것은 P군은 성과를 나름 챙겼고, 의욕적으로 대체에너지 부서를 지원한  K과장은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는 현실의 기업상황에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무조건 좋은 자리라고 덥석 물지마라.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
남이 갈라놓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에서 내장을 꺼내고 그 책임만을 뒤집어쓰는 경우, 남이 먹은 식탁에서 설걷이만 열심히 하는 경우를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흔히 목격한다.

남에게 좋은 자리라고 나에게 좋은 자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서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자. 냉정한 사고와 욕심없는 마음만이
당신을 지옥에서 구해준다.

배가 갈라진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그냥 거위이다.
단 한번 식탁에 오늘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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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서 무너질 때 까지 자신을 방치하지마세요.
아닌데 하면서도 가고 있는 자신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재산순도 아니고 일을 많이 하는 순서도 더더욱 아닙니다. 아니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가고 있는 길에서 한걸음 비켜서서 생각해 보세요. 다른 길이 보일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상을 주세요.
자신에 대한 사랑을 보이세요.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실이 원래의 당신이 꿈꾸던 이상이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배우는 것은 좋습니다.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경험도 요긴한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서 무의미한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낭비는 당신의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행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가장 잘하는 것 재미있어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가장 생각나고 즐거워하는 것을 취미로 삼으면 됩니다.

세상이 바라는 것을 하기 보다는 
성실과 열정이 내재되어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인생은 편도열차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을 타인으로 하여금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노예적인 삶에 자신의 삶을 허비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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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분야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 분들이나 기업을 보고 우리는 흔히 한우물을 지속적으로 팠다는 식으로 판단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물을 파고 물을 취하는 방식이 항상 같다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자연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변화되는 방식으로 우물을 파왔다는 것이다. 하는 일은 일정하되 방식은 수시로 환경에 적응했다는 것이 지속적인 한우물을 통해서 성공을 이룬 원인이다.



개인의 경우에 일정한 성공을 거둔 이후에 지속적으로 자신 스스로 변화를 꽤하기는 힘들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유혹이 워낙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은 뼈를 깍는 노력으로 자신을 다듬고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한번의 성공을 거둔 후에 몰락의 길로 돌아서는 개인은 의외로 많다.  지속적인 성공을 하는 사람들은 특징은 박수칠 때 이미 다른 분야로의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선구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다.

기업의 경우 일정한 성장기를 거쳐 살아남아서 거대 조직화되면 여러가지 비효율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 다양한 관리기법이 등장하고 안정적인 관리방식이 강조되고 강화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경영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기업의 적응생존력을 한번 살펴보자.
1960년대 일본의 10대 수출품목 가운데서 1990년대에도 이 명단에 남아있는 것은 자동차, 철강, 조선 뿐이었다. 물론 이제 조선은 탈락되었다.

미국 포춘지가 매년 선장하고 있는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서 지난 30년 간 연속해서 뽑힌 기업은 10퍼센트가 채 안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965년에 발표된 10대 기업 명단에 속한 회사중에서 1990년에 100대 기업의 명단에서 볼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모든 회사가 변화하는 여건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의 삶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적응한다는 것을 의외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적응한다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방향과 기본적인 정신만 일치 한다면 탄련적인 상황적응성이 적응력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장애가 있으면 위나 아래 또는옆으로 피해 흘러가면서 스스로의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적응력이 앞으로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성과와 성공의 타성이 어쩌면 미래의 실패를 가져오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 수도 있다. 성공의 시기라고 스스로 생각될 때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고 미래를 읽을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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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선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그 산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산이다. 그래서 알래스카 고속도로를 오가며 화물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들은 존경심을 갖고 그 산을 대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산을 휘돌아가는 온갖 커브길과 비탈길들이 얼음에 뒤덮이고, 도로 옆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도사리고 있다.

수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그 길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마지막 운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날 화물 트럭을 몰고 그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에 나는 캐나다 산악 경찰대와 마주쳤다.

거대한 기중기가 동원되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추락한 트럭 한 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나는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나서, 부서진 트럭이 서서히 시야에 올라오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지나가던 많은 트럭 운전사들도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그때 경찰 한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발견했을 때는 운전사는 이미 사망한 뒤였소. 이틀 전에 심한 폭설이 내렸을 때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 같소. 흔적을 찾지 못하다가 해가 난 뒤에 차체가 햇빛에 반사되는 걸 보고 발견할 수 있었소."

 

경찰은 천천히 머리를 흔들더니 입고 있는 파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여기 당신들이 읽어야 할 편지가 있소.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얼어죽기 전에 몇 시간 동안은 살아 있었던 것 같소."

 

나는 경찰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끔찍한 사고 현장과 죽음을 접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것들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난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경찰관은 우리에게 편지를 건네면서 눈물을 닦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울기 시작했다.

운전자들은 각자 조용히 그 편지를 읽고는 말없이 각자의 트럭으로 돌아갔다.

 

편지의 내용이 내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지금 여러 해가 흐른 뒤에도 그 편지는 마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절벽 아래로 추락한 트럭 운전사가 죽기 전에 쓴 그 마지막 편지를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에게 읽어 주고 싶다.

..........................

 

사랑하는 아내에게,

 

어떤 남자도 이런 편지를 쓰고 싶진 않을 것이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잊어버리고 하지 못한 말들을 이제나마 할 수 있으니 참으로 행운아라고 할 수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당신은 내가 당신보다 트럭을 더 사랑한다고 날 놀리곤 했소.

 

내가 트럭과 더 많은 시간을 동거하며 지낸다고 말이오. 물론 당신 말마따나 나는 이 쇳조각을 좋아하오.

이 놈은 나에게 충실했소.

내가 힘겨운 시간과 힘겨운 장소들을 통과하는 것을 이 놈은 지켜보았소.

 

거대한 양의 화물을 실으면서도 나는 이 놈에게 의존했고 직선 코스에서는 이 놈이 한껏 속도를 내주었소.

이 놈은 지금까지 내 위신을 한 번도 떨어뜨린 적이 없소.

 

하지만 당신은 이것을 알고 있소? 똑같은 이유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 역시 내가 힘겨운 시간과 힘겨운 장소를 통과하는 것을 지켜봐 왔소.

 

우리의 첫 번째 트럭을 기억하오? 걸핏하면 고장이 났지만, 그래도 우리가 굶지 않을 만큼 돈을 벌어준 그 중고 트럭 말이오.

그 트럭의 할부금과 세금을 내기 위해 당신은 밖으로 나가서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소.

 

내가 버는 돈은 죄다 트럭으로 들어갔고, 당신이 번 돈으로 우리는 그나마 먹을 것과 비를 가릴 지붕을 가질 수 있었소.

나는 그 트럭에 대해 자주 불평을 했지만, 당신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소.

 

당신이 힘들게 번 돈을 길바닥에 깔아야만 했을 때도 난 당신의 푸념을 한 번도 들은 기억이 없소.

당신이 불평을 했다 해도 난 아마 당신의 불평을 듣지 않았을 것이오.

 

부끄럽지만 나는 당신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일에 너무 몰두해 있었소.

이제 나는 당신이 나를 위해 포기한 모든 것들을 생각하오.

 

옷, 휴가, 파티, 친구들과의 모임... 당신은 한 번도 불평을 하지 않았고, 난 그런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소.

친구들과 앉아서 커피를 마실 때도 나는 언제나 내 트럭, 내 장비, 내가 내는 할부금 등에 대해 말했소.

 

당신이 비록 나와 함께 조수석에 타고 있진 않지만 당신이 나의 영원한 동업자라는 사실을 난 잊고 있었소.

마침내 우리가 새 트럭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노력보다는 당신의 희생과 결단력 덕분이었소.

 

내가 몰고 다니는 트럭에 대해 난 자부심이 대단했소.

나는 당신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컸소.

하지만 난 그것에 대해 당신에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소.

 

난 당신이 당연히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소.

하지만 만일 트럭에 왁스칠을 하는 데 들인 시간의 절반만이라도 당신과 대화하는 데 바쳤다면 아마도 난 내 진실한 감정을 고백했을 것이오.

 

내가 도로를 달려온 지난 여러 세월 동안 난 당신의 기도가 나와 함께 달리고 있음을 언제나 알고 있었소.

하지만 이번에는 당신의 기도가 부족했던 모양이오.

난 부상을 입었고 몹시 상태가 좋지 않소.

이것이 내 마지막 운전이 될 모양이오.

 

이제 나는 더 늦기 전에 당신에게 진작에 수없이 말했어야 할 것들을 말하고 싶소.

내가 너무 트럭과 내 일에 몰두해 있느라 잊어버린 것들 말이오.

 

나는 지금 그동안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숱한 기념일들과 생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

내가 길 위에 있었기 때문에 당신 혼자서 가야만 했던 아이들의 학교
연극회와 하키 경기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

 

 

내가 어디쯤에 있고 일들은 잘 되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당신 혼자서
보낸 그 숱한 외로운 밤들에 대해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소.

 

당신에게 매번 전화를 걸어 단순히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물을까 생각했지만 무슨 이유들 때문엔가 난 그것을 잊어버렸소.

나는 또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내가 느꼈던 그 마음의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

 

집안의 큰 모임이 있을 때마다 당신은 일가 친척들에게 왜 내가 참석하지 못하는가를 설명하며 난처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소.

난 언제나 트럭의 엔진 오일을 교환하느라고 바빴거나, 트럭을 정비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나, 아니면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야 했기 때문에 잠을 자고 있었소.

 

항상 이유가 있었소.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것들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소.

우리가 처음 결혼했을 때 당신은 전구 하나도 갈아 끼우지 못했소.

 

그런데 이삼년만에 당신은 내가 플로리다에서 화물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혼자서 눈보라 속에서 아궁이를 수리했소.

당신은 아주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 내가 트럭 수리하는 것을 도왔고, 당신이 직접 트럭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는 장미밭으로 후진했을 때 난 정말로 당신이 자랑스러웠소.

 

집 앞에 트럭을 주차시키고 들어가려다가 당신이 승용차 안에서 날 기다리다 잠이 든 것을 보았을 때 난 정말로 당신이 사랑스러웠소.

당신은 밤 두 시든 낮 두 시든 나한테는 언제나 영화배우처럼 보였소. 당신은 미인이오.

당신도 그걸 알고 있소? 난 당신에게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지만 당신은 어떤 여자보다도 미인이오.

 

난 내 인생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소.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잘 내린 결정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청혼을 한 것이었소.

 

당신은 트럭 운전사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나 역시 알지 못했소.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 되었고, 당신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소.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당신은 항상 그곳에 있어 주었소. 당신을 사랑하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사랑하오.

내몸은 지금 큰 부상을 당했소.
하지만 내 가슴은 더 많은 상처를 입었소.

 

내가 이 여행을 마쳤을 때 당신은 그곳에 없을 것이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로 이제 나는 정말로 처음 혼자가 되었고, 그것이 겁이 나오.

난 당신이 무척 필요하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알고 있소.

 

재미있는 일이긴 하지만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이 트럭뿐이오.

우리의 삶을 그토록 오랫동안 지배해 온 이 망할 놈의 트럭 말이오.

내가 그토록 여러 세월을 함께 살아온 이 찌그러진 강철 덩어리... 하지만 그것은 내 사랑을 돌려줄 수 없소.

 

오직 당신만이 그것을 할 수 있소.

당신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지만 당신이 이곳에 나와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소.

난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소.

 

하지만 난 마지막 달리기를 혼자 끝마쳐야 하는 것이 겁이 나오.

아이들에게 내가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어떤 아이도 트럭을 몰아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진 마시오.

시간이 다 되었다는 걸 느끼오.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 혼자서 살아갈 날들이 걱정될 뿐이오.

내가 이 생에서 어떤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을 사랑했음을 항상
기억하시오.

난 단지 그걸 말하는 걸 잊고 있었을 뿐이오.

 

 

당신을 사랑하는 빌,

1974년 12월.


삶의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때 부터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의 구분을
자신이 편한일과 불편한일로 나누는 습관이 있습니다.
 

가족이 없이 행복은 없습니다.
가정이 없이 삶의 가치는 없습니다.
항상 가족을 위한 시간을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이는 당신의 인생을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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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명한 사건중에서 타이타닉호의 대서양 횡단중의 침몰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국내사건으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참혹한 이러한 사건의 와중에서도 누구나 투덜거리며 짜증을 낼만한 일로 인해서 자신의 목숨을 건졌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타이타닉호에 승선예정이었던 상당수는 꿈속에서의 만류와 급한 가족의 일이나 회사의 일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신 타이타닉호의 승선은 엄청난 로망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몹시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아쉬움이 오히려 그들의 남은 삶을 연장시켜 주었다. 신은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신다.

삼풍백화점 사고의 경우에도 백화점 입구까지 왔다가 지갑을 집에 두고와서 몹시 짜증을 내면서 다시 집으로 가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은 불만이고 짜증이었겠지만 결국 이로 인해서 자신의 목숨을 건졌다. 이 또한 신의 사랑이고 조상의 돌보심일 것이다.

우리는 눈앞의 걸림돌을 불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상당수 걸림돌은 우리의 삶이나 인생의 성공에서 꼭 필요한 단계이고 과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사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약한 부분이 극심한 추위로 인해 죽게 될 식물들은 공기가 채워진 눈덕분에 혹독한 날씨로 부터 살아남게 된다.
눈이 내려 회양목을 덮는다면, 정원사는 그것을 털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을 그대로 두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기와 바람의 극심한 기온이 쉽사리 회양목을 죽일 수 있다. 수북히 덮인 눈은 또한 무수히 많은 수의 곤충,벌레,달팽이 그리고 땅속의 다른 많은 작은 생명체를 보호해준다.

지표와 쌓인 눈의 바닥 사이에 보존된 공기층은 단열재로 작용하여 그 아래 생명체가 얼어 죽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걸림돌과 장애,역경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고단함에 주안점을 두고 자신의 인생이나 능력을 폄하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그러한 과정이 성공의 사례를 검토해보면 많은 도움이 되고 인생사의 교훈이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결국,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나약하게 연출하고자 하는 소심함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인생에 등장하는 다양한 고난과 역경을 친구처럼 귀히 대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보다 열정적으로 될 것이며, 성공에 다가가는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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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삶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삶

2010. 2. 16. 19:15 | Posted by 계영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나치스에 의해 아우슈비츠에 젊고 유능한 한 유대인 외과의사가
수용됐습니다.

 

그는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 동족들의 행렬을 보면서 머잖아 자기 자신도 가스실의 제물이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동 시간에 이 젊은 외과의사는 흙 속에 파묻힌 유리병 조각을
몰래 바지 주머니에 숨겨 가지고 돌아왔습니다.그리고 그날 부터 그는 매일 그 유리병 조각의 날카로운 파편으로 면도를 했습니다. 동족들이 차츰 희망을 버리고 죽음을 기다리며 두려운에 떠는 동안, 그는 독백하듯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

 

그는 죽음의 극한 상황 속에서 아침과 저녁 꼭 두 번씩 면도를 했습니다.

 

오후가 되면 나치스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 일려로 선 유대인들 중에서 그날 처형자들을 골라냈습니다.하지만 유리 조각으로 피가 날 정도로 파랗게 면도를 한 외과의사는 차마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잘 면도된 파란 턱 때문에 삶의 의지에 넘치고 아주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으며 그를 죽이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많은 동족들이 가스실로 보내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비망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나태한 방법이다.즉음은 그리 서두를 것이 못 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그 외과의사는 결국 나치스가 완전히 패망할 때까지 살아 남았습니다.살아서 아우슈비츠를 떠날 때 그는 이렇게 독백했습니다.

 

 

 

"가스실로 떠난 동족들은 한 번 죽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난 살아 남기 위해 매일 죽지 않으면 안 돼었다."
--
카톨릭 굿뉴스--

힘이들때 포기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고 가장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 방법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전까지 우리는 무슨일이든 할 수 있다. 범죄가 아닌 한 모든 시도는 우리의 의욕을 가능하게 할 것이면 모든 노력은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너무 일찍 포기하고 너무 일찍 자신에게 무능함을 드러내지 마라.힘들다고 숨고 힘들다고 약하게 보이지 마라. 그러한 무능함과 약함이 당신을 더욱 쉽게 포기하고 더욱 자주 포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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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흔들림은 가정의 문제이다.

2010. 1. 14. 11:00 | Posted by 계영배

요즈음은 사회전반적으로 근무시간이 연장되어지고 근무시간외에 해야할 일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학생들의 경우에도 방과후가 진정한
공부시간이라는 우스게 소리가 당연시되는 것처럼 늦은 저녁까지 학원을 전전긍긍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가족적인 시간이면서 하루를 마감하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는 저녁시간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어쩌다 한번 맞게 되는 가족모두의 저녁시간은 오히려 서먹서먹한 공식행사처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불편함만을 제공한다.

이제는 가족 모두가 알아서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일상화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의 가족 공동체는 보다 큰 비용인 가족의 위기라는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녀간에 다양한 대화가 오가며 서로간의 의사를 공유하던 시간은 보다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 훨씬 덜 중요한 일들에 의해서 방해되었고 부부간의 신실한 대화 역시 업무와 또 다른 일로 인해서 단절되었다.

우리는 가끔 황당한 기사나 이야기를 듣는다.
어느 날 퇴근한 아버지/남편을 자녀와 부인이 합심하여 집밖으로 내쫓아 버린이야기, 황혼이혼, 부모자식간의 난투극......
그러면서도  다른 세상은 말한다.
성공적인 자녀의 요건은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라고......

아이러니하게 얽히고 섥힌 가족관계의 심각성이 어쩌면 지난해 
소설"엄마를 부탁해"를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회생활의 성공이든 인생의 성공이든 가족이 없으며 않되고 가족이 없는 성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가족을 희생하고 가족간의 무관심과 무신경이 가져온 사회적인 성공은 성공이 아닌 철저한 실패와 절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너무나 늦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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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걱정은 없다.

2010. 1. 2. 10:37 | Posted by 계영배

근심퇴치법

 

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보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 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폭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이외수님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중에서"

실제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의 근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욕심을 버리고 대박의 심리에 무심하다면 우리는 삶의 가치를 배가 시킬 수 있다. 또한 이미 지나버린 일이나 우리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근심은 그 자체가 삶의 퇴색시키지는 못한다.

결국 우리의 마음가짐은 대부분의 근심을 없앨수 있거나 근심에 무심할 수 있으면 더욱 중요한 것은 근심이 근심을 먹고 산다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행동하는 습관을 지닌다면 우리는 근심없는 한해를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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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와 세상살이

2010. 1. 2. 10:29 | Posted by 계영배

강철왕 카네기가 어렸을 때 하루는 어머니를 따라 식료품 가게에
갔습니다.

어머니가 물건을 사는 동안 카네기는 앵두 상자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식료품 주인 할아버지가 "너 앵두 먹고 싶은 모양이구나, 한 줌 집어 먹으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카네기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도

"할아버지께서 허락하셨으니 어서 한 줌 먹으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카네기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주인 할아버지는 기특하다는 듯이 한 웅큼 앵두를 집어
카네기에게 주었고 그때서야 카네기는 인사를 하고 받았습니다.

 

가게 문을 나선 후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왜 처음에 가만 있었니?"

 

카네기가 방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손이 내 손보다 크니까 그랬지 뭐!"

하느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청하기도 전에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간절히 원함에도 주시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보다 더 좋은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또한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은총은 가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내를 가지고 그 분의 뜻을 기다리는 슬기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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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해하지 맙시다.
잘못된 판단과 조급한 시작은 반드시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좀 멀리보다 좀 자신을 추스리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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