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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연의 삶

2010. 5. 4. 10:21 | Posted by 계영배

인생은 롤러코스트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안전바 옆으로 결코 떨어지지 않는 그러나 두려움과 경외감이 함께 공존하는 그러한 롤러코스트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행운과 행복은 한꺼번에 오지 않고
불행은 항상 몰려다닌다고......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성공은 행운과 기회가 맞물려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운이나 시운,기회등을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불행이나 실패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외적인 요인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심리적인 언바란스가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자신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교훈을 다시한번 뒤돌아 보고 싶으면 한번 쯤 자신을 돌아보라.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한번 생각해보라. 보이지 않던 그 무엇이 보일 것이다.


세상은 의외로 단순하다.
복잡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세상을 복잡하고 힘들게 사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아무리 누군가를 속이고 사기와 폭력이 난무해도 그래고 좋은 사람이 많고 따스한 사람이 많다.
우리가 어디에 우리의 눈을 두고 있는가에 따라서 삶은 달라보인다.

성공에서 달콤한 교훈을 얻고 실패에서 쓰라린 교훈을 경험한다면 우리의 삶은 의외로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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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삶은 흔적이 있다.

2010. 4. 20. 11:59 | Posted by 계영배

작은 중소기업에 김주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슨 잔정이 그리많은지 후배들 뒤치다꺼리나 하기

일쑤였고,
아무도 손도 안 대는 서류함을 거의 날마다 정리하느라 퇴근 시간을 넘겼으며,

어김없이 오후가되면 커다란 쟁반에 커피 여러 잔을
들고는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하며

설탕 대신에 미소 한 숟가락을 더 넣어 책상에 놓아

주었다.

 

그러던 그가 휴직계를 냈다. 아내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병간호를 위해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지만 한심하고 남자답지못하고
무능하여,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회사에 없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남기고 간 빈자리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것이었다.

 아침마다 마실 수 있었던 향긋한 커피는

기대할 수 없었을 뿐더러 책상 위의 컵들엔

커피 자국이 그대로 남은 채 먼지만 쌓여 갔고

향기 나던 화장실은 들어가고 싶지 않을 만큼 더러워졌으며, 휴지통에서는 늘 휴지가 넘쳤고, 
서류들은 어디 있는지 서류철끼리 뒤죽박죽 섞여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부서내 사람들은 점점 짜증난 얼굴로 변해갔고,

서로에게 화를 냈으며,

시간이 갈수록 큰소리가 오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가득했던 화평은 어느새 조금씩 떠나가고
있었다.

 

하루는 같은 동료였던 박주임이 상사의 짜증을 다 받아내느라 기분이 몹시 안 좋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문득 김주임이 끓여다 준 커피가 그리워졌다.

김주임이 생각나자 아직 남아있는 그의 책상앞에 무심코 갔을때 작은 메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내가 편할 때 그 누군가가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때 누군가는 편안할 것이다 "


-카톨릭 굿뉴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공짜를 모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디에서나 자리가 나는 어디에서나 향기가 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Comment

우리의 탄생과 현실에서의 우리의 존재를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하기에 인생의 경험들 가운데 단 것만이 아니라 쓴 것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삶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주된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의존의식, 즉 의타심일 것이다. 처음에는 부모나 피붙이에게 기대고 나중에는 조금만 안면이 있으면 기대려고 하는 습성이 삶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불행하게 만든다.  부족함이 없고 부족하더라도 주변에서 어떻게든 신경을 써서 지원을 해주었던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의타심이 강하해지고 자생력이 부족하면 책임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와 지속적이 만남을 갖고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을 줄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기대일 뿐이고 상대의 의무도 아니다. 이런 막연한 기대감은 살아가는 데 힘이 되기 보다는 걸림돌이 된다. 스스로 사막에 떨어져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경험만이 삶을 진지하게 만들고 유비무환의 정신을 내재화시킨다. 스스로 돕지 못하는 자는 그 누구도 돕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무장하는 것이 좋다.

성취감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맞서는 강한 의지와 결단이 수반되고 이를 실천하였을 때 가능하다.

막연하게 형이상학적인 사고에 의존하는 인간군들도 위험한 인간들이다.  천운을 타고났다느니 자신의 운은 40대 이후에 풀린다느니 하는 말이나 어린시절 유명한 역술가가 자신의 상을 보고 놀랄정도로 만복을 타고 났다느니 하는 정체불명의 말들에 목을 매고 기정사실화하는 희안한 인간군상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현실은 물론 처참하다 못해 비참한 상황이다. 물론 본인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시도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아쉬운 인간군상들이다.

이들에게 힘든일 고단한 일은 자신들의 몫이 아니다.
오로지 편하고 화려한 일만을 골라잡고 싶어하고 책상에서 폼생폼사하고 싶어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인생이란 하나이 희화적인 도박이나 막연히 주연이 되겠지하는 삼류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바꾸지 않는다.
스스로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바뀌어진 미래는 없다.
단경험도 물론 요긴하지만 쓴 경험도 말이 필요없이 긴요하다.

경험을 가리지 말자. 이왕이면 힘든경험과 체험에 익숙해지자.
다 인생의 금과옥조가 될 것이다.

Comment


[마음의 방]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 치려고 담요를

깔아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요.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 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 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카톨릭 굿 뉴스\

제 마음의 방은 항상 전투중이고 사냥중입니다.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무엇인가에 상상력을 보태어 공포와 자만의 상상의 생명체를 키웁니다.
하루에 한번은 청소가 필요한 마음의 방... 이제 그 방을 사랑과 나눔의 방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Comment

다양성선택의 순간들

2010. 3. 17. 10:20 | Posted by 계영배


지금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중대한 선택의 현장에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눈으로 당신의 가능성으로 이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배운 모든 것을 이용해서 판단하는 눈과 지성이 필요하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으니까요.. 자신만을 믿으세요.



둘이서 같이 이 세상을 보는 것은 서로 의지가 되고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힐 가능성을 줄여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책임감이 감소하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비난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합니다. 반대로 성과가 기대이상일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비즈니스계에서 흔한 말이 있습니다.
"동업은 공짜인 것 같지만, 가장 비싼 것이다. 다만, 비용을 나중에 지불하기 때문에 공짜인 것처럼 보인다."



질주하는 삶은 삶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다만, 지나친 질주는 목표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키도 열정을 감소시킵니다. 가끔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습니다. "진인사 대천명"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당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삶은 당신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지금 고용창출을 위해서 다양한 정부시책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청년실업해소를 위해서 창업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청년들의 열정을 창업의 기운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웃기는 일이다.
직장생활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도 창업의 성공율은 5%를 넘지 못한다. 다양한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직장생활과 조직생활의 노하우를 지니고도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창업의 공간이다.

동아리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년창업에 대한 독려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날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웃기는 현상이다.

지나치게 이른 창업은 오히려 경제적인 성과의 유무와 별개로 독이된다. 실패는 세상을 두렵게 만들고, 성공은 세상을 우습게 만든다.
결국 창업은 자신감과 확신 그리고 자신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기준으로 선택되어야 할 분야이다.

 

다만, 지나친 몰두로 인해서 열정을 바닥내서는 안된다.
경험으로 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는 사회생활 그것도 창업은 정말 인생의 진국을 맛보게 해 줄 것이다.

Comment

"세상은 보는대로 존재한다"

 

신발 사러 가는 날 길에 보이는 건 모두 신발 뿐이다.

길가는 모든 사람들의 신발만 눈에 들어온다.

사람 전체는 안중에도 없다. 미장원을 다녀오면

모든 사람의 머리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그외엔 아무것도 안보인다.

 

그런가하면 그 반대 경우도 있다.

근처 도장방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나는 갑자기 멍해진다.

어디서 본듯도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바로 회사앞에 있는 그 도장방을

아침저녘 지나다니면서도

도대체 기억속에는 남아있질 않는 것이다.

마치 그집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다.

세상은 내마음 끌리는대로 있기 때문이다.

조화도 그게 가짜인줄 알때까진 진짜꽃이다.

빌려온 가짜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리고는

그걸 진짜로 갚으려고 평생을 고생한

모파상의 어느 여인의 이야기도 이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내가 보는대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있다고 또 다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있는게 다보인다면 대뇌중추는 너무 많은

자극의 홍수에 빠져 착란에 빠지게 될꺼다.

그러기에 대뇌는 많은 자극중에

몇가지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선택의 기준은

그때 그때의 대뇌의 튠(TUNE)에 따라 달라진다.

 

정말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나같이 머리나쁜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고로 세상은 공평하다.

 

신나게 기분좋은 아침엔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더 넓고 명랑해보인다.

그래서 휘파람이라도 절로 나오는 튠이 될땐

슬픈 것들은 아에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은 우리가 보는것만 보인다.

해변에 사는 사람에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저녘,

문득 바라다본 수평선에 저녘달이 뜨는 순간,

아 ∼ 그때서야

아름다운 바다의 신비에 취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우린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느끼질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별이, 저녘놀이,

날이면 날마다 저리도 찬란히

열려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대신 우린 너무 슬픈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너무 언짢은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한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다고 물론 쉬운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반컵의 물은 반이 빈 듯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찬 듯 보인다.

비었다고 울든지, 찼다고 웃든지,

그건 자신의 자유요 책임이다.

 

다만 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대로 있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겠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그래서 좋다.

비바람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구름장을 꿰뚫어볼 수 있는

여유의 눈이 있다면,

그위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일 것이다.

 

세상은 보는대로 있다. 어떻게 보느냐...

자신의 책임이다.

                                        - 이 시 형 박사 -

이 세상의 즐거움과 슬픔이 반반인 공간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어느 곳에 발을 디디고 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그 곳을 중심으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비관적인 사고와 실패의 두려움 그리고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는 우리의 인생을 비관과 실패와 분노로
자연스럽게 연출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세상에 대한 즐거움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은 역시
우리의 인생을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즐겁고 고마움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줍니다.

결국, 선택은 우리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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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가라 그러나 멀리가려면 친구와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인생은 의외로 먼길이다.
인생은 동반자가 필요하다.
그 동반자는 배우자나 친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그 동반자는 멘토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결국 인생길은 그 누구든 동반자가 필요하고 멘토의 존재가 필요한 장거리 여행이고 여정이다.

누구에게나 부지불식간에 멘토를 지니고 있다.
다만, 제대로 된 멘토를 갖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삶의 자꾸 꼬이는 사람들은 독불장군이거나 아니면 전혀 도움이 안되는 사회적인 지진아들끼리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멘토는 필수적인다.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멘토라도 하더라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멘토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가.
멘토가 반드시 기존에 알고 있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다만,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하고 인생의 표상이 되어야 하다는 사실은 불변의 원칙이다.

첫째. 인격을 확인해라.
학력이나 집안의 재력보다 인격은 그 향기가 강하고 쉽게 감응되는 성질의
것이다.  가능하면 인성과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을 멘토로 삼아라. 나이나 성별은 불문이다.

둘째. 성실성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을 선택해라.
아무리 능력이 있어보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성실성이 담보되지 않은자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에는 외톨이가 된다.
생활의 습관이나 성실한 삶의 자세는 일만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

세째. 과거를 검증해보라.
멘토는 미래의 당신을 위한 사람이지만 과거만이 멘토의 자격을 검증해준다.과거의 행적이 검증되지 않거나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아무리 능력과 실적이 좋더라도 멘토로 삼으면 안된다.
멘토는 지나치게 엄격한 금욕주의자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과거의 자신의 삶에 책임으로 지고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준 인생이 궤적을 지닌 자여야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하고 그 중에는 멘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명심해라. 현명하고 지혜로운 멘토는 당신이 성공을 앞당기고 당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Comment

 

우리는 일상에서 또는 사회생황에서 무엇인가에 매달려서 전력을 다하는 경우가 있다. 그 과정에서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하는 일에 온갖 정신이 쏠려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방법적인 오류가 아닌 목표설정과 결과에 대한 오류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눈들이 있고 기대감이 팽배해있어서 그 길에서 도중에 하차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과가 모두에게 공유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이렇때는 모두에게 진실을 말하고 잠시 쉬어가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낭떠러지 인줄을 알고 있으면서 밀어붙일 필요는 없다.

다음의 일화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상황이다.

<우리 회사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수백만 달러 짜리 거래를 맡겼다. 나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수개월 동안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계약을 체결하기 바로 전에 나는 각 수치들을 이중,삼중으로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서류를 보고 있으면 목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갑자기 그 거래가 우리에게 결코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외관상을 좋은 거래이지만 변수가 너무 많았고 그 변수들 중의 하나만 우리의 기대에서 어긋나고 손해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동료들은 너무나 들떠 있었고 경영진은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래의 문제점을 누구에게라도 말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막연히 잘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을 진행시켰다.

몇 달이 지난 지금 내가 걱정하고 애써 무시했던 일은 현실화되었다.
회사는 어려움에 처해있으면 대량의 해고는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회사의 존립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나는 다시 결정을 내리기 직전의 순간으로 돌아가서  내가 생각한 진실을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벼랑을 향해서 질주하기 보다는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기대와 막연한 추즉으로 자신의 선택의 냉정함을 잃기 보다는 오히려 한발 물러서서 자신과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나치게 내가 서있는 곳을 합리화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다.왜 리먼 브러더스와 베어스턴스사가 망했는지 생각해보면 집단적이 사고와 집단사고의 방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면서 맹목적인지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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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2010. 2. 16. 19:40 | Posted by 계영배

친구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메아리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상호간에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게 마련이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 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어울린 다는 말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시구가 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사랑하는 님들 주말 잘 보내세요..

약간 흐린하늘이 비를 부르네요...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 中에서
------------------------------

사람은 절대로 혼자 살수 없다.
사람은 절대로 친구가 필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친구가 있는 삶은 그 만큰 멀리 바라보며 갈수 있는 삶이다. 아프리카의 속담에 이런말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라.그러나 멀리가려면 같이가라."

당신이 혼자라면 지나치게 빨리가려고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인생은 멀리가는 삶이 진정이다.
누군가와 같이가라.
같이가는 삶은 행복하다.
혼자의 행복은 의미가 없다.
행복은 관계다.
좋은 관계가 행복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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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같이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주변을 아우르는 삶이 진정한 군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고여있으면서 자신의 독선과 자신만의 곡간을 지니고 썩어가는 줄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행복한 군자의 삶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도 아닌 독한 생명체의
몸부림일 뿐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군자는 항상 언동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위엄이 없이 가볍게 보일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은 비록 배울지라도 모래
위의 누각과 같이 헛될 뿐이다. 충실과 신의를 생활의 신조로 삼고 모든 언동을 이에 의해서 해야 한다. 안이하게 자기보다 지덕이 못한 사람과 사귀며 좋아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는 적절한 통제와 동기부여 그리고 적당한 거리와 감시를 통해서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고, 둘째는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그리고 이해를 통해서 동일한 목적을 향해서 서로 화합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후자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인간에 대한 불신과 신뢰의 부족은 당연히 전자를 향해 나아가고 오히려 전자의 방식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불신의 사회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무게감이나 존재감이 있는 사람들
충실과 신의가 있는 사람들
삶을 찰라가 아닌 흔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성실한 자세가 생활화 된 사람들을
그 구성원으로 한다면 우리사회는 두번째의 방법으로 조직이 움직이고 두번째의 방식으로 사회가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역시 문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해답의 중심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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