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2011. 7. 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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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서, 운이 나빠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항상 외적이 요인에 의존하는 초라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스스로 관여할 수 없는 것만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죽음은 전혀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다가온다.
물론 영혼을 알고 있고, 하늘은 알고 있다.
돈으로도 명예로도, 강건한 근육으로도 사신의 다가옴은 막을 수 없다.


인간은 그저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면 되는 것이고,
그 천수가 다함은 스스로 아는 경우가 종종있다.
물론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경우에만.

생각이 깊고 영혼이 맑은 사람은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일반인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지방 산골에 한 신부님의 계셨다.
인근 마을을 토박이셨던 신부님은 자연스럽게 외진 그 마을을 택했고 그 마을에 있는 성당과 좀 떨어져 있던 사제관을 오가며 미사를 봉헌했다.  원래 털털했던 신부님은 항상 자신의 세간살이나 의복에는 관심이 없었고, 방청소도 일주일에 한번이나 할 정도로 위생상태가 심히?빈약했다.   그런데 요즈음 명치끝이 저려오고 숨이 갑갑해지는 경우가 간혹있었다. 주위에서는 병원을 가보라고 권했지만,바쁘기도 하고, 워낙 동네가 작아서 병원에 간 사실이 노모에게 알려질 것이고 그리되면 노모의 걱정이 더하여질 것이 뻔해서 극구 사양하면서 잘 버티고 있었다.

가끔은 좀 떨어진 공소에서 새벽미사를 봉헌하곤 했다.
그날도 미사봉헌을 위해서 아침에 나름 일찍 일어났는데 어찌된 일인지 몸이 무겁고 가슴이 신통치가 않았다. 새벽공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자전거를 타고 공소를 향했지만, 힘도 들고 땀도 나고해서 미사시간에 10분이나 늦었다. 이미 공소를 채우신 동네 어르신들의 불만스런 표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간단히 사과를 하고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마치고 서둘러 사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익숙해진 다리가 보이는 순간 숨이 차왔다.

다리난간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쭈그리고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은 차가와져 왔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새벽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 젊은 사제는 이 땅을 떠났다.

아침 일찍 등교길에 재잘거리던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은 익숙한 복장의 안면있는 신부님이 난간에 쪼그리고 앉아계시는 모습을 의아하게 여기고 신부님을 깨웠으나 이미 신부님은 계시지 않았다.

사인은 심근경색.

이 젊은 사제의 죽음은 그 작은 시골마을에서 한동안 큰 화제가 되었다.
더우기 그 사제의 방을 정리하던 친지들의 말에 따르면 평소에 그렇게 털털했던 신부님이 방을 어찌나 깔끔하게 정리정돈해 놓으셨는지 놀랐다고 한다. 책 한권 빨래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제자리에 놓여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신부님은 그 날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임을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사에 우연은 없다.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만이 남아있다.
삶은 그래서 소중하다.
필연과 필연의 이어짐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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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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