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계영배

공지사항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조직생활의 형태가 무엇이든지 최소한의 소양이나 최소한의 의무란 무엇일까..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에서나,일을 하는 데 있어서 지키지 않으면 안될 최저의 규칙이면서 어찌보면 최소한의 정상인의 사회성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을 피하려고 하고,피할 수 없으면 배제하려고 한다.그렇게도 안되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모여서 몰아내려고 한다.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조직에서는 이루어져야 할 과정이다.

조직에서의 성과나 그 업무능력 이전에 중요한 것은 회사의 규칙이다.지각,조퇴,결근등 이는 업무처리 능력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근태의 모습들이다. 이러한 최저의 규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는 사회성의 문제요 성의의 문제다. 이런 사람이 조직에 있으면 조직 전반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만아니라.업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열정도 감퇴된다.

이런 기본적인 근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업무능력을 시간이 지나면 보완이 될 수 있지만,이런 근본적인 소양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지지 나아지기는 어렵다. 이미,습관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조직원은 회사밖으로 위치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기본이나 기초가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사회에서 기본이나 기초를 제대로 갖춘 이들은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더우기,기본이나 기초의 경우 겪어보아야만 그 정도를 알수있다. 사람과의 만남이 성공을 좌우하고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고 한다면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을 갖춘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 더욱 긴요하다.

만남은 자기 마음되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관계설정은 자신의
의사로 가능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이 없는 사람은 과감하게 잊어라.

Comment

새벽의 아름다움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신선한 공기속에

오늘도 신문돌리는 꼬마는 열심히 뛰고 있다.

스스로의 삶의 무게만큼의 신문을 안고

놓는 걸음 한걸음 한걸음마다 인생을 배우려는듯

이마에서 방울진 땀들이 머리카락을 적시고

어느덧 어깨뒤로 햇살이 비치운다.

모든이가 깨어나 아침을 맞이할때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꼬마는 미소를 머금는다.

다음 새벽을 기다리며

----------------------------------------------------
누군가에게 새벽은 두려운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다가오는 날 맞이해야할 삶이 압박감이 자신이 목을 조르고 심장의 고동소리를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새벽은 희망의 시간이면 삶의 부활입니다.

새뱍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만드신 새로운 날의 시작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Comment

이뿐 준이 이야기... 퍼왔지여.. ^^

 

준이는 백화점에 가자고 엄마를 졸랐습니다.

"엄마, 언제 데려갈거야?"

"아빠가 월급을 받아오면 가자꾸나."

 "그럼 몇 밤을 자야 해?"

 "가만 있자, 오늘이 십 오일이니 열흘 남았구나."

 "열흘이면 열 밤을 자야 하지, 엄마?"

 "그렇지, 네 열 손가락 전부를 꼽아야지."

 "와, 그렇게나 많이."

 이번에는 엄마의 대꾸가 없습니다.

 엄마는 빨래를 하기 위해 이불호청을 뜯고 있습니다

 "에이, 엄마 시시해."

 준이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대문에 달아 놓은 방울종이 한참을 딸랑딸랑 울립니다.

 엄마는 대문 틈으로 빠꼼히 내다보이는 골목을 보면서 한숨을

 포옥내쉽니다.

 아빠의 월급을 받으면 집 살 때 빈 돈 이자 물어야지, 계돈 내야지,

 할아버지 약값 보내드려야지, 준이의 유치원비 내야지,

 그러고나면 한 달 생활비도 달랑달랑한데

 저렇게 백화점에만 가자고 조르니 은근히 준이가 미워집니다.

옆집 리태네 엄마는 속도 모르고 백화점 구경시켜 주는 것이 뭐가

어렵느냐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 준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가 완구점앞에서

비싼 로보트 사 달라고 떼를 쓰는 통에 혼이 난 엄마입니다.

엄마는 수도가에서 시름을 씻어 버리기라도 하는 양 이불호청을

빨았습니다.

몇 번이고 맑은 물로 헹구었습니다.

대문의 방울종이 다시금 딸랑딸랑 울리었습니다.

꽃밭가에 와서 쭈그리고 앉은 준이의 얼굴빛이 노오랬습니다.

 

"왜, 누구하고 싸웠니?"

 

"아아니."

 

"그런데 왜 그러니?"

 

"엄마, 나 점심 먹은 거 다 토했어."

 

"뭐라구? 낮에 사 먹은 호떡이 체한 거로구나.

 

내가 뮈랬니?

 

군것질 심하게 하지 말라 않던."

 

엄마는 약국으로 달려가서 소화제를 사 왔습니다.

 

그러나 준이는 소화제를 먹고도 다시 토했습니다.

 

자리에 누이자 어지럽다며 울었습니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아빠가 달려왔습니다.

 

"이상한데, 병원에 한번 가 봅시다."

 

아빠가 준이를 업고, 엄마는 준이의 신발을 들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준이를 진찰해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였습니다.

 

"머리 사진을 한번 찍어 봐야겠는데요."

 

엄마 아빠는 말문이 막혀서 한동안 바로 서 있지를 못하였습니다.

 

한참 후, 컴퓨터실에서 나온 의사 선생님이 급히 엄마 아빠를

찾았습니다.

 

"수술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준이는 이내 환자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깎았습니다.

 

큰 주사를 맞으며 수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울고 있는 엄마를 보고 준이가 말을 걸었습니다.

 

"엄마 왜 울어?

 

....엄마도 아파?"

 

"....."

 

"나처럼 많이 아파?"

 

"...."

 

"엄마, 내가 엄마 것까지도 아풀께. 엄마 울지 마."

 

"준아...."

 

"엄마 우는 거 난 싫어."

 

"....."

 

"엄마, 내가 엄마 것까지도 울께. 엄마는 웃어.

 

나는 엄마 웃는 얼굴이 젤 좋아."

 

이 때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원들이 들어왔습니다.

 

준이를 조용히 밀차위로 옮겨 실었습니다.

 

아빠는 담배를 물고 벽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엄마가 밀차를 따르며 말했습니다.

 

"준아, 수술을 받다가 하나님을 뵙게 되거든 준아, 엄마 아빠와 더 살게

 

해달라고 빌어라, 응.

 

그곳이 천사님들이 계시는 꽃대궐이더라도 준아, 꼭 그렇게 빌어야

한다.

 

엄마 아빠도 빌께.

 

우리 준이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기도 올리고 있을께.

 

설혹 집이 없어지고, 라면을 먹고 산다더라도

 

준아,

 

엄마는 우리 준이와만 함께 산다면 늘 감사기도를 잊지 않겠다."

 

준이의 눈동자 속에 엄마가 사뿐 들어섰습니다.

 

"걱정 마, 엄마.

 

나는 얼른 나아서 백화점에 가야 해.

 

백화점 가서 엄마 선물을 사야 해."

 

"엄마 선물?"

 

"응."

 

"무슨 선물인데."

 

준이가 엄마의 귀를 잡아당겼습니다.

 

그러고는 작은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엄마는 기운 속옷을 입었잖아.

 

내가 전번에 봤다.

 

그래서 할머니가 와서 준 돈하고, 아빠 친구가 와서 준 돈하고를 베개

 

속에 감춰 뒀어.

 

백화점에 가서 엄마 속옷 살려고."

 

하늘에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별들은 모두 준이가 들어가 있는 수술실을 초롱초롱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바람이 기지개를 켰습니다.
-----------------------------------------

어느 사이에 우리는 행복을 모르고 사는 세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과연 우리는 영원히 살수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단편적이면서 지엽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의 생각과 눈을 멀게 합니다.


 


Comment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 지나친 과거의 집착과 경험으로 포장된 과장된 과거의 성과에 맹목적인 추종을 보이게 된다.

뱀은 성장을 위해서 허물을 벗는다.가치가 있었고 소중했지만,과거의 허물과 과거의 행적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위한 미래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더라도 파괴와 창조는 하나의 진리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얼핏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같지만,봄만 하더라도 삼한사온이라는 인고의 기간을 보내야 한다.

강물을 보라.흐른다는 대전제는 변함이 없지만,오늘 흐르고 있는 그 물은 이미 어제의 그 물이 아니다. 
어떠한 세상에서든 변화는 당연한 것이고 개인의 감정이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좁은 것이 아니다.

신학자 린호프는 일찌기 이렇게 기도했다.
"신이여,당신께서 내려 주신 만물 가운데 변해야 할 것의 변할 수 있는 용기와 변치 말아야 할 것의 영원성을 내려주시고,이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을 가지게 하소서".

변화하는 사회,다양한 상품과 다양한 욕구가 산재하고 밀려오는 사회,이 속에서 정지된 채 과거의 타성과 과거의 성과만을 회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삶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상실한 매너리즘의 극치인 종의 삶이다.

변화를 선도하지 못한다면 그 변화의 방향성과 추이라고 감지해야
한다.결국,현대도시인으로서의 삶을 원한다면 공부를 해야 하고
이러한 공부는 현대인이라면 선택이 아니라,필수이다.

Comment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림자:자살

2009. 11. 1. 10:52 | Posted by 계영배
자살은 스스로 자신이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자신을 현실로 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가장 극단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자살자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가족,친구,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는 몇 년째 OECD국가 중 자살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2007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10~19세 청소년들의 사망원인도 교통사고에 이어 자살이 2위를 차지하고 있고 20~39세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노인 인구의 자살률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으며 연령별 자살률은 노인 인구가 가장 높습니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과 생명에 대한 책임의식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인내심이 낮은 원인도 있지만,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기형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삶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절망하는 이웃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이웃간의 정과 사랑 그리고 사회안전망 등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청소년 자살자들의 경우 학업과 관계되거나 교우관계와 관련된 문제인 바,체계적인 상담시스템과 성적일변도의 학교분위기 그리고 대학위주의 현 사회시스템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청창년층의 자살원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경제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는 바, 이는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인 관여를 통해서 극빈자층의 자생력과 자영업자의 삶의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관심입니다.
자살의 직전에 항상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는데, 따스한 말 한마디와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만 가지고도
다수의 생명이 보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