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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일부러 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실수를 하면서 살아 가는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모양은 틀리더라도 어린아이가 아직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것과 같이 또 다른 것을 가리지 못하고 실수를 합니다


실수는 그와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실수보다

나타나지 않는 실수를 죽을 때 까지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이는 실수 보다는 마음 속에서 자기 정욕과 탐심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어린아이의 실수를 뒤치레 해주듯이

신도 사람의 실수를 보아주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실수 보다는 자연과 신에 대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실수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주 작은 실수 사람과 사람과의 실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기 실수를 모르는

어린아이 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좋은 글 중에서...

너무 자신에게 너그럽다면

당신은 이기적인 존재가 됩니다.

너무 자신에게 가혹하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너무나 힘든

고뇌를 심어놓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실수와 실패는 매양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실수와 실패가 당신 자신의 양식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이란 그런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수와 실패를 양분삼아 자라면서 더욱 커지는 고목나무가 바로

삶이고 그 삶이 바로 당신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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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을 주는 하늘나라 77번지   


한 기자가 하늘 나라에서 고난과 복을 담당하는 신을 찾아서

어떻게 하면 고난을 피하고
복 받는 인생을 살수 있는지에 대해서 취재할 계획이다.

하늘 문 입구에서 경비아저씨를 찾았다.  
" 저 복을 담당하는 신을 만나려고 합니다만..."

"이쪽으로 가다보면 77번지가 나오는데 거기로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이나 역경을 담당하는 신이 계시는지도 가르쳐 주세요."
"그분도 같은 번지에 살고 있습니다." .

77번지 문을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 흰 수염 할아버지가 구름 의자에 앉아서

커다란 구멍 속으로 뭔가를 열심히 던지고 있었다.


공같이 둥근 모양이였는데, 그 크기가 다양했다. 

 "할아버지! 지금 뭐 하십니까?"  

  "할아버지!"

 "아이구 깜짝이야!" 

“ 여기서 뭐 하시나요? ” 

"보면 몰라?복을 나누어 주고 있잖아 .."

  "아니 ,공 던지기 놀이 하면서 
무슨 복을 나눠 준다 하십니까?"
 기자는 앞에 놓여있는  공을 집어 들고는  찬찬히 뜯어 보았다. 
그런데 그 공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들이 크게 적혀 있었다.

"고난. 근심, 걱정,역경. 두려움.... "

"할아버지! 
고난 ,근심,역경 ,두려움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할아버지는 공을 하나 들더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몇 겹의 껍질을 벗기고 또 벗기자 

그 안에 황금색의 찬란한 빛을 발하는  공이 튀어 나왔다.

그 공에는 ” 福 “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로 이게 ''''福''''이야!"

 "지구로 복을  무사히 내려 보내기 위한  고난. 역경.두려움으로 특수

포장했어."

  "대신 이걸 맛는 사람은 우선 고난 역경 두려움의  껍질을 벗어야해.

그 뒤에 찬란한  성공이 찾아 오는거지."

"아하 그래서 복을 담당하는 신과  고난을 담당하는 신이 같은

신이였군.!" 

" 큰 공도 있고 작은 공도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다른 겁니까?"

 "당연히 큰 공은 큰 복을 받을 놈한테 던져주고

작은 공은 작은 복을 받을 놈한테 던져주지."

 

  "복이 크면 고난도 크겠죠?"

 "당연하지. 그런데 복 할아버지


기왕 줄 복이면 복만주지 왜  고난까지 줍니까?"

 "복은 인간의 성숙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복은 준다고 누구나 받을수 있는 것이 아니야.

  충분히 성숙한 인간이어야
그에 응당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거지.

바로 고난이나 역경이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을 성숙 시키고 또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거야." 

" 그런데 나는 복 받으라고 애써 던져 주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고난이나 역경이라는  껍질을 채 벗기도 전에 포기를 해버려..."

조금만 극복하면 복이 발동하는데  그걸 못 기다려....

그러니 복을 던져줘도  그게 그냥 어려움인줄만 알지.

복인지 모르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야."

<좋은 글>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126:6)

 

세상만사가 아는 만큼 보이고

겪은 만큼 알게된다.

삶이 가치를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만, 몸소 그 가치를 겪어가면서

그 진가를 음미하기는 힘들다.

우리에게 복과 성공에 다다르는 길에 있는 무수한 장애와 걸림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공포는 복을 향해가는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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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막연한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는 사람.

지금의 소중한 사랑을 미래의 막연한 짜릿한 사랑을 위해서

소홀히 하는 사람.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위해 행복의 세잎클로버를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사람.


노력과 열정없이 막연하게 복권을 사는 사람


나눔과 배려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감을 모른채 살아가는 사람.


눈물젖은 빵을 먹으면서 냉수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

목적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아무생각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

계획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이 세상이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현실은 냉혹한 정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늘의 암울함에 익숙해져서 햇살의 따스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지금 이 순간 힘이 든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사람.

삶의 모든것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사람.


내일의 태양을 믿지 못하고 오늘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

좌우를 살펴볼 때 아무도 주위에 없는 사람.

혼자 밥먹는 것에 익숙해져서 삶은 혼자라고 착각하는 사람.


가족이라는 단어에 무덤덤한 사람.

사랑이라는 말을 마치 술안주같다고 여기는 사람.

진실이 어색하고 행복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

사람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사람.

결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

인생은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삶은 항상 승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경쟁은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일을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한심하고 바보같고 멍청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이란 아무런 생각없이 타성과 관성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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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식은 확률이다. 그것도 얄퍅한 지식으로 만들어낸 확율.
신은 그 인간의 삶을 주관하신다. 그것도 확실하게.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라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있고, 4남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죽었고, 셋은 결핵에 걸려 살 희망이 없는데,

폐결핵의 중증인 어머니는 임신을 했다.

 

 

 

 

오늘의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

내릴지도 모를 그 아이가

악성(음악의 성자) 베토벤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인간 지식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너무 쉽게 포기하기도 하고, 너무 쉽게

사람들을 정죄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인간의 이성의 법정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뜻까지도 함부로 비판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은

그렇게 함으로 판단할 만큼 간단하지 않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인생사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욱 오묘하며, 온갖 지적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영혼은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모든 크리스챤은 이 일에 부름 받았다.

- 작자 미상 -

인간이 변화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렵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러나 신은 가능하다. 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변화와 누군가의 삶의 변화를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고 우리들만의 어설픈 이성으로 판단하는가.
조금 넓게 보고 조금 깊게 생각하고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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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의 첫 단추는 이해입니다.



                         * <빵집 주인의 이해없는 사랑>
 
 

 어느 빵집에 한 청년이 매일 와서 식빵을 사 가지고 갔다.

그 청년은 건강이 안 좋은지 얼굴이 늘 창백했고

가난해서인지 항상 싼 식빵만 사 갔다.

그러던 중 빵가게 여주인은
 
매일 오는 그 청년을 기억하게 되었고
 
허약해 보이는 그 청년이 영양가 없는 싼 빵만
 
사 먹는 것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빵에 버터를

듬뿍 넣어서 그 청년에게 팔았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
 
청년은 빵가게에 와서

여주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다가
 
마침내는 좌절한 표정으로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는 도시 설계전에 응모하기 위한
 
설계도의 마무리 손질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설계도의 지우개로 사용하기 위해 식빵을 사 갔는데,

이제 그 빵 때문에 설계도를 다 망쳤다는 것이다.

여주인은 정말 순수한 사랑으로 그 청년을 도와 주고 싶어서

자기 돈을 들여 버터를 넣어 주었지만
 
결국 그 청년에게 엄청난 손해만 끼쳤다.

빵집 여주인의 사랑은
 
이해가 없는 사랑이었기에 그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었다.
 
 
 

사랑이란
 
내가 무엇을 해주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유익한 보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해없는 사랑은
 
일을 그르칠 수 있는 많은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사랑은 막연한 희생도 
맹목적인 추종도 아니다.
사랑은 소유도 집착도 아니다.
사랑은 극단적인 바램도 결코 아니다.
상대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미풍처럼 주면서 
상대의 삶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요소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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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합니다.

둘은 혼인해 살게 됩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합니다.

문제를 잘못 풀어 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툽니다.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고 서로에게 한말,

[난 최선을 다 했어]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모셔온 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남녀가 그 것도 전혀다른 감성의 소유자로서 하나의 공간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기에는 정말로 많은 인내와 이해 때로는 모른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의지해 상대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자신에 대한 의지를 높이는 것이 사랑할 자격이 있는 자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로지 이해받고 배려받으려는 응석받이 사랑은 이제 사랑이 아닌 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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