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생강 2018. 10. 2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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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가장 확실한 인간사에서 평등한 한가지다.

매일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라.

우울해지고 삶의 침울해진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죽음에 대한 기억과 죽음에 대한 숙연한 사고는

삶속에 진정한 가치를 생각하게 되고 나의 삶과 타인의

삶속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한 인생사에서 만나고 접하게 되는 모든

이들과 모든 생명에게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진정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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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2015. 11. 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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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은 시기가 문제이지 결코 피해갈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죽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재산 다줄테니 3년만 더 살게 해달라*

대부분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라고 한다.
예전에 한 기자가 쓴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라는 다큐멘터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면회가 왔다”고 간수가 호출해 문을 나서면 얼마 안 가서 왼쪽과 오른쪽
두 갈래 길로 갈라진다고 한다.

갈라지는 길의 중앙에 한 나무가 서 있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면회소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사형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일단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는지라
간수가 왼쪽으로 밀어 붙이면 그 나무를 붙잡고 늘어져서 나무의 가운데가 손자국으로 닳아 있을 정도라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임박한 죽음을 잠시나마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행동인지 모른다.

병원에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장면을 수없이 봐왔다.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 오랜 기간 몸부림치다 생을 마감하는 사람 등….
오래 전 한 의사가 불치의 암 진단을 받았는데 그 분은 암이라고 설명을 해도 믿지를 않았다.
따라서 항암제를 머리맡에 놓아 둬도 임박한 죽음을 믿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

【사람은 ‘나만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수없는 생과 사의 갈림길을 보면서 욕심없이, 화내지 말고 살자고 결심했는데, 어느덧 또 욕심-화를 내니…】

어느 누구나 반드시 맞이하는 죽음…. 언제가 됐던 우리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들 있지만 대부분이 자신은 아니라고 믿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욕망, 욕심, 갈등 등이 사회를 지배하는 지도 모른다.
또한 황혼기를 훌쩍 넘어선 사람들도 권력과 돈에 눈이 멀어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육체를 교도소에서 보내는 이야기도
우리 주위에서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다.

모 재벌의 회장. 어린 시절 나의 초등학교 동창의 형으로 동네도 같았다. 중년이 돼서는 대기업의 회장으로 취임해 나와는 거의 마주하기 힘든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그가 50대 초반에 뇌종양(암)으로 모 대학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 내게 연락을 했다.
우리 병원의 암센터로 옮겨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상태가 심했으므로 입원을 해 투약을 받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항암제 치료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어떤 환자는 “폭탄을 맞는 기분” “땅 속으로 꺼지는 기분”이라고 하는가 하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표현하기까지도 한다.

입원한 지 1개월쯤 지났을 때 회장이 나를 보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미 체중은 반으로 줄어 있었고
처음 보면 누군지 못 알아볼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나의 이름을 불렀다.
“준희야. 내가 너한테 부탁이 있다.
세계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내 병을 좀 낫게 해줄 곳이 없겠냐?
여기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젓는 것 같은데 단 0.1%라도,
아니 실험 대상으로라도 치료 받을 곳이 없냐?
너는 내게 진심으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처절함이 묻어 있었다. 대답이 없는 나를 쳐다보면서
“내 모든 재산 다 줄 테니까
산이나 강가에서 한 3년 만이라도 살게 해 줄 수는 없겠니?”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네
(중략)
탐욕도 벗어버려, 성냄도 벗어버려
하늘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중략)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강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어느 신사가 쓴 글귀가 생각난다.
나는 방을 나서면서 이제부터는 지금의 나를 행복하다고 여기고
욕심, 성냄 등을 버리고 착하게 살자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사소한 일로 격하게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봤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CNB저널에서 -]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숙제를 지닌 존재입니다. 욕심내지말고, 탐욕으로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넘기지 말고 순리와 천명에 따라서 착하게 살아갑시다.

그래야 웰다이닝이 우리의 삶을

마지막으로 이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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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생강 2014. 12. 2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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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남기지 말아야 할 것과 남길 것 



훌륭한 화가는 언제 붓을 거두어야 하는 줄 알고, 
훌륭한 지휘자는 어떻게 연주를 마감해야 하는 줄 압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도 어떻게 정리하고 마감하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삶의 길에서 남기지 말 것과 남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아쉬움을 남기지 말고, 기쁨을 남겨야 합니다. 
우린 때때로 놓친 고기를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놓친 고기는 본래 내 것이 아니었기에 
내게 오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환영에서 벗어나 삶에 아쉬움을 남기지 말고, 
지금 순간순간 나타나는 삶을 차지하고 기쁨으로 채우십시오.

둘째는 회한을 남기지 말고, 참회를 남겨야 합니다.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왜 이렇단 말인가?” 하는 
회한이나 자탄을 남기지 마십시오. 
회한은 삶에 실재하는 현실이 아니라 망상이며 
나약함의 증거일 뿐입니다. 

회한은 회한을 낳고 매순간 삶의 밑바닥에 구멍을 내버립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회한을 버리고 참회를 하십시오. 
참회는 과거를 벗고 새 날을 새롭게 맞도록 하는 
영적인 힘과 은총을 얻게 합니다. 

셋째는 치적을 남기려 말고, 감사를 남겨야 합니다. 
자화자찬으로 치적을 남기려는 것은 영적 빈곤을 드러내는 것이며, 
삶의 깊음과 은총의 높음을 알지 못한 때문입니다. 
아니면 삶에 아쉬움을 가진 거짓된 미화일 뿐입니다. 

살아서 스스로 동상을 세운 이들이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깊음에 이르고 높은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이에게 
남는 것은 감사뿐입니다. 

- 좋은 글 - 

한 번의 탄생과 한 번의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다.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삶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 삶이 바로 당신을 향해 있다면 명심해라.


죽음은 현실이고 실재이다.

 

그리고 당신과 나 모두에게 있어서 오늘을 소중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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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의 똥침 2011. 11. 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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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한 것이 두가지 있다.
단 한번의 탄생과 한번의 죽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면서도 가장 불확실한 것이 있다
가장 확실한 것은 누구에게나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은 그 시기를 알수없다는 것이다.
죽음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아무런 준비없이 다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구에 있는 카톨릭 교회 묘지입구에 다음과 같은 라틴어 격언이 자그마한 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이는 죽은 이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뼈아픈 교훈입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무덤속에 있으나, 이곳은 내일 살아있는 당신이 있을 곳이기에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여 인생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여러 사람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한 번뿐이고 사실 다른 사람의 죽음은 목격하는 것이다.

죽음은 당사가가 죽은 순간에 체험하는 것이지 다른 누가 대신 체험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그 죽음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그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이제 매일 죽음을 생각하자.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자.
죽음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삶은 더욱 빛이 날 것이다.
죽음이 있어서 삶은 더욱 그 가치가 있고 그 찬란함이 있다.
항상 우리의 모든 행동과 태도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와 함께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가자.
죽음으로 인해 당시의 삶은 더욱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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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직녀 2011. 9. 2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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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노부부의 처절한 인생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만두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는 겁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 곤 합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

    부부가 뭐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헤어졌다.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 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습니다.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 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낡은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겁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습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 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답니다.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 가셨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옮긴글) 
    --------------------------------------------------------
    여러번 여기저기서 읽은 글인데
    왜 이를 다시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올까요.
    왜 우리는 삶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의 고집대로 하려고 할까요.
    가끔은 가끔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좀 더 냉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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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2011. 3. 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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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

1막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 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城과도 같습니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 합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2막

어느 때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라고.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3막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합니다.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니까요.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4막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던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요,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죽고 난 뒤 보다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듯이
복은 스스로 지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맑고 향기롭게
날마다 복 짓는 좋은 날 되소서...

<모셔온 글>

우리 모두는 탄생과 더불어 죽음을 향해서 한발씩 내딛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영원히 살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예외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가 저승길에 올라서 염라국에 들어가기 전에 천당과 지옥으로 방향을 정한다고 합니다.
지금 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가지고......
일상의 작은 배려가 우리의 죽음 이후의 삶을 보장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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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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