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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수학 공식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면
우리가 가진 것이
십 분의 일로 줄어드는
속세의 수학과는 달리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었기에
그것이 ‘천’이나 ‘만’으로 부푼다는
하늘나라의 참된 수학,

끊임없는 나눔만이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행복 정석을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이태석 신부)에서 

우리는 나눔에 인색하고 어색해한다.

나눔도 연습이 필요하고, 복습이 필요하다.

작은 나눔도 실천을 통해서 반복되면 삶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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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내어 줌

 

내가 가난한 한 노인에게

모포 한 장 내주기를 거부했던 그 추운 날 밤에

나는 죽어서 하느님께 심판받는 꿈을 꾸었는데,

  

그때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커다란 바위 밑에서 지내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포를 내주기를 거부했던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 뒤에

외인부대 육군 중위인 군의관을 만났는데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를로 수사님, 당신들이 타츠루크로 가서

우크셈에 있는 천막촌을 찾아 간다면

거기서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뭔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다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나는 최대한 빨리 그 의사가 가르쳐 준 천막촌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침이 밝아 오기 시작했고 아직 추웠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외딴 천막으로 안내했습니다.

거기에는 죽어 가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없지만 아주 어린 아기가 있는 흑인 노예였습니다.

  

나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음산했습니다.

 

가난한 여인은 마른 풀로 엮은 깔개 위에 길게 누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조상인 투아레그족 특유의 색깔인

푸른색 면으로 된 넝마조각을 덮고 있었습니다.

온통 너덜너덜해서 전혀 보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녀 옆에는 반쪽짜리 모포에 싸인 아기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죽음을 앞두고도 자기는 추워서 떨면서

아기는 따뜻하게 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주인들에게 억지로 몸을 내주고 정말로 하찮은 존재로 취급당하다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흔히 죽어 가듯,

그렇게 죽어간 비그리스도인 그 가난한 여인은

진정 자기 아들에게 완전한 사랑을 실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그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단순하게 그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내가 모래알처럼 메말라 있음을 느꼈고,

순수한 본성을 통해 생활한 그 여인의 삶

-내가 은총의 탁월성을 통해 살수 없었던-

앞에서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없이 가난한 그 천막 아래,

아무런 인정도 존경도 받지 못하는

그 여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행하신 사랑의 행위,

곧 순수하게 자신을 내주는

그 사랑의 행위를 성취했던 것입니다.

  

- 카를로 카레토/보이지 않는 춤 중에서 -

우리가 울부짖는 신에 대한 사랑속에
우리는 오직 우리의 기대와 바렘만이 존재한다.
신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항상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 우리는 나눔의 정신을 알고 있는가.
진정 우리는 나눔이 가치를 알고 있는가.

Comment



밥값은 내고 싶은대로 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귀신들을 아귀라고 합니다.
굶어죽은 넋들이지요. 배불리 먹되 음식을 남기지 않아
이 세상에 굶주린 불쌍한 이웃과 아귀와 더불어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식당 입구의 팻말로 보기엔 자못 비장하다.
가게 이름도 남다르다.
2007년 변산공동체의 윤구병 작가가 뜻을 모아 세운
마포구 서교동 '문턱없는 밥집' 얘기다.

고물가 시대여선지 형편껏 밥값을 낼 수 있는 식당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윤의 논리로만
이곳을 설명하긴 어려웠다.

이곳의 '대표 살림꾼' 역할을 맡고 있는
심재훈 총괄매니저를 만났다.

문턱없는 밥집은 매일 점심때마다 모든 식자재를
유기농 농산품으로만 쓴 비빔밥을 차린다.
밥값은 손님의 형편껏 내면된다.

당초 1000원의 기준이 있었지만
심 매니저는 손님들이 이마저 부담을 느낄까봐
아예 없앴다.

"자본주의의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보면 됩니다.
어려운 농민들을 도우면서 도시의 서민들과의
건강한 연대를 유지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죠."



요즘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더 비싼
'국산 유기농 농산물'을 써가며
식당 운영이 가능할 지 궁금했다.

이곳의 한 끼 당
식자재 원가만 4700~5400원 사이라는 게
심 매니저의 설명이다.

인건비나 각종 세금 등
기타 비용까지 합치면 6000~7000원은 받아야
정상인 셈이다.

그런데도
4년째 '오픈 프라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매년 '장부상으로는' 적자다.

"물론 저희도 물가 폭등으로 어렵긴 마찬가지죠.
그래도 지역 유기농 농민들과의 신뢰 관계를 통해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또 저녁에는 친환경 전통주와 안주 등을
현실적인 가격에 팔며 보전을 합니다.
또 다행히 이 건물이 재단의 소유여서
임대료는 안 나가고 있어요."

2009년부터 이 밥집은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돼
주방 아주머니들의 임금을 지원받고 있기도 하다.
결국 수익금은
또다시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위해 쓰인다.

하루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손님은 80~90명 선.
전철을 타고 인천에서 온 할아버지부터
미국인 대학생, 노숙인 까지
다양한 계층과 연령이 어우러져 있다.

"형편이 못돼 돈을 내지 못하시는 분 부터
어쩔 때는 한 끼에
12만 원까지 내시는 분도 있어요.

문을 연 첫해 평균을 내보면
1인당 1300원을 내셨는데
그 다음해에는 1900원, 2500원 식으로
늘고 있어요.
우리 취지에 동참하시는 분들이
늘었다는 방증이죠."



최근 눈에 띄는 현상은
이른바 '88만원 세대' 손님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일자리를 잃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높아진 월세에
어렵게 사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여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다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꼭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우리 식당에선 식사 후
쌀 한 톨 고춧가루 하나 남겨선 안돼요.

나눔과 함께
'빈그릇 운동'으로 비움까지 실천하고 있는 것이죠.
이게 결국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지구를 살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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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

나누고자 하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한다.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Comment

위로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2010. 2. 23. 10:51 | Posted by 계영배

냉혹함과 무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인들이 일반적입니다.
가끔은 저를 포함에서 이 도시의 인간들이 강시나 좀비처럼 느껴집니다.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이 행복을 위한 계단이나 디딤돌이 아닌 다양한 적을 만들과 불평과 불만을 만드는 사악한 어둠의 공장처럼 느끼면서 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때문에" 가 이닌 "~임에도"라는 표어를 인생의 진리로 삶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한때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몇해가 지닌 지금 상대방이나 회사 그리고 조직은 "~임에도"자신을 받아주어야 하고 정작 본인은 철저히 "~때문에"로 무장해서
만남의 대상,회사,친구들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언바런스는 필연적으로 이 사회를 인간의 향기가 아닌 강시의 냄새로 가득차게 만듭니다.

자신의 어려움과 고난은 엄청나게 과장되고 상대방이나 회사의 어려움은 극단적으로 저평가되는 다양한 만남과 사회생활의 언바런스는 결국 칼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 지냅니다.

내가 슬픈 와중에도 누군가를 위로한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위로 받는 것이고 내가 힘든 와중에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바로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도 얼음같은 심장으로 무장한 우리들의 삶속에서는 한낱 메아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추운 날 아침, 버스 한 대가 에버딘을 지나고 있엇습니다.
좌석 한구석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아름다운 제비꽃 한 아름을 안고 있는 남자가 앉아았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슬퍼 보이는 한 젊은 여자가 그의 꽃을 바라보면서 앉아있었다. 그 남자가 내려야 할 곳이 가까워 오자 그는 그 젊은 여자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제비꽃은 제 아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저는 그녀를 보러 가는 길인데, 제가 슬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꽃을 준다면 그녀가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그 젊은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오, 저는 제비꽃을 좋아해요! 제가 고마워했다고 그녀에게 전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후 그녀는 꽃을 안은 채, 그 남자가 버스에서 내려 애버딘 공원묘지 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 사회는 위로와 위안이 필요합니다.
살벌한 경쟁의 장이기는 하지만 이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들은 분명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피가 흐르를 생명체는 모두가 따스합니다.
이 사회가 결핍과 경쟁으로 신음하는 것은 재화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나눔과 배려가 턱없이 부족하고 욕심은 지나치게 넘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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