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지나간 과거를 미화하지도 말자. 다만, 지나간 과거에 존재했던 행복의 순간들을 잊지는 말자.계영배 2011. 8. 25. 10:17반응형
이불 한 채의 사랑
부부는 결혼한 지 12년 만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성공한 친구들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둥지였지만
부부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벅차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살림을 닦고 또 닦으며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당신....집 장만한 게 그렇게도 좋아?"
아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지 그럼, 얼마나 꿈에 그리던 일인데."
힘든 줄 모르게 하루가 갔습니다.
겨우 짐 정리를 마치고 누웠는데
남의 집 문간방 살이를 전전하던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여보 그 집 생각나?
옛날에 살던 그 문간방."
"아, 생각나요."
“우리 거기 한번 가볼까?”
숟가락 몽둥이 하나 들고 신혼단꿈을 꾸던
그 가난한 날의 단칸방.
그곳은 아내의 기억속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부부는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얇고 따뜻한 이불 한 채를 사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달동네
문간방을 찾아갔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아내가 말 했습니다.
"이렇게 높았었나?"
남편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땐 높은 줄도 몰랐는데."
부부가 그 옛집에 당도했을 때
손바닥 둘을 포갠 것만한 쪽방에선
오렌지색 불빛이 새나오고 있었습니다.
기저귀가 펄럭이고 아이가 까르륵대는 집.
마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간 것만 같은 부부는
들고 간 이불을 문간방 툇마루에
슬며시 놓아두고 돌아섰습니다.
그 날 문간방 젊은 새댁이 발견한 이불보따리 속엔
이불보다 따뜻한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10년 전 이 방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집에 돌아와 이불을 덮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따뜻했었지요."
달동네 계단을 내려오며
부부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옛집에 찾아와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이불 한 채를 선물하고 내려가면서
부부는 세삼 깨달았습니다.
그 이불은 문간방 식구들의 시린발보다
부부의 마음을 더 포근히 감싸 덮는 이불로
평생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셔온 글>
가끔은 아주 가끔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삶의 가치와 향기를 느껴보는 것도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영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