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른 유전자와 완전히 동떨어진 환경속에서 자라왔고, 상상불허의 우연적인 상황들을 통해서 경험과 지식을 쌓아 왔으면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고 그와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는 오만이고 또 다른 착각이다.
심지어 일란성쌍둥이고 사고의 차이가 현격한데 타인과의 일체화를 기해하는 것은 너무나 소박하고 장엄한 기대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몰이해의 상황이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의 탄생조건과 생활조건이 다양하고 완전힌 개별적으로 연출되어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약 50년전 켄지라는 이름의 피그미인이 어떤 인류학자와 함께 처음으로 자신이 살던 아프리카의 아주 빽빽한 열대림을 벗어나 대평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얀 하늘아래 작고 검은 점으로 보이는 물소들이 멀리서 나타나자 켄지는 그들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인류학자에게 그것이 어떤 종류의 곤충이냐고 물었다.
그 인류학자는 그것들이 물소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켄지는 크게 웃으며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인류학자는 물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고, 바보도 아니었다.
사실 켄지는 지평선을 전혀 볼 수 없는 빽빽한 정글에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들 대부분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 즉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물이 달라보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비단 켄지의 경우만이 아니다.
하나의 문화와 환경에 익숙해지면 다른 이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와 생활이 거짓처럼 보인다. 이처럼 삶이란 익숙해지는 순간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 되기 쉽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이 우리에게 다양한 기회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