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와 직녀 2011. 4. 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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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라는 나무

언젠가부터 내 옆에 나무가 생겼습니다.
그 나무 때문에 시야가 가리고
항상 내가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비록 내가 사랑하는 나무이기는 했지만
내 것을 포기 한다는게
이렇게 힘든 것 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런 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귀찮고 날 힘들게 하는 나무가 밉기까지 했습니다.
괴롭히기 시작했고 괜한 짜증과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덕을 많이 보고 있다고 느꼈기에
이 정도의 짜증과 심술은
충분히 참아낼 수 있고
또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는 점점 병들었고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태풍과 함께 찾아온 거센 비바람에
나무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어쩌면 나무의 고통스러함을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그 다음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무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여겼던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무를 보살피는 사이에,
나무에게 짜증과 심술을 부리는 사이에,
나무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그늘'이 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다시금
사랑해 줘야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임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소중한 그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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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만남은 내가 부족한 것을 쉽게 얻으려고 하는 얍삽한 거래와 투기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만남은 바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나누고 타인과 배려와 사랑을 교환하는 교감의 장이다.
당신의 배우자가 억만장자에 멋지고 메너좋은 사람이라면 당신과 만날일이 없다. 당신의 배우자가 모든 지성을 통달하고 삶의 이치를 꿰고 있는 성인이라면 역시 당신과 만날일이 없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부족하기 때문에 당신과 만나는 것이다.
명심해라. 당신이 지나치게 높은 곳과 넓은 곳만을 지향하는 동안 서서히 당신은 혼자의 삶에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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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2010. 8. 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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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다 바람 같은거야


다 바람 같은거야
뮐 그렇게 고민하는거니?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야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 바람이야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뿐이야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뒤엔 고요하 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지 다  바람이야

이 세상에 온 것도 바람 처럼 온다고
이 육신을 버리는 것도 바람처럼 서라지는거야

가을바람 불어 곱게 물든 잎을 떨어뜨리 듯  
덧 없는 바람 불어 모든 사연을 공허하게 하지

어차피 바람뿐인걸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니
결국 잡히지 않는게 삶인걸
애써 무얼 집착 하니 다 바람이야

그러나 바람자체는 늘 신선하지
상큼하고 새큼한 새벽바람 맞으며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바람처럼 살다가는게 좋아


- 묵연 스님 글중에서 -

삶은 찰라다.
삶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간을 넘어서 저곳으로 흘러간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흘러가고 흔적없이 가뭇없이 그 어떤 곳으로 가고 또 그 어떤 곳에서 온다. 집착과 욕심이 우리에게서 떠나는 날 행복은 자연스릅게 우리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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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2010. 5. 2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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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슴에 거짓을

숨기고 있습니다.

늘상 진실을 생각하는 척하며

바로 사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나만은 그 거짓을 알고 있습니다.

 

나조차 싫어지는 나의 얼굴

아니 어쩌면

싫어하는 척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인간적

인간적이라는 말로써

인간적이지 못한 것까지 용납하려는

알량한 내가 보입니다.

 

자신도 속이지 못하고

자신도 속이지 못하고

얼굴 붉히며 들키는 바보가

꽃을 나무를

하늘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웃습니다.

비웃음이 아닌 그냥 웃음이기에

더욱 아픕니다.

언제쯤이면 나도

가슴 다 보여 주며 웃을 수 있을지요.

 

눈물나는 것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 서정윤 -

나의 진실이 남이 알까봐 두려워한적이 많습니다.
다양한 미사여구도 나의 진실을 덮어주지는 못합니다.
행복한 삶도 진실이 없다면 위선일 뿐이고 불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진실만을 보여주는 삶은 어렵습니다.
때로는 나조차도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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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세상사 2010. 4. 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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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 아내가 행상 남편에게 보내는 사부곡

 

 

안녕하세요?

 

저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서른아홉살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저의 다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남편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한살때 열병으로 소아마비를 앓은 후

장애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멋진 글귀로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제가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을 통해서입니다.

 

지난 1983년 우연히 라디오의 장애인 프로그램을 통해

문밖 출입을 못하며 살고 있는 저의 사연이 나갔습니다.

 

그당시 제주도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 제 이야기를

듣다가 들고 있던 펜으로

무심코 저의 주소를 적었답니다.

 

남편은 그 다음날 바로 저에게 편지를 했지만

저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글을 잘 몰랐던 탓도 있었지만

남자를 사귄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남편은 답장도 없는 편지를

1년 가까이 1주일에 한번씩

계속 보내왔고,

저는 여전히 답장 한통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주소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그 먼 곳에서

서울 금호동의 저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장애자인 제 사정상

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먼 곳에서

저를 찾아온 사람이기에 손수 정성껏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만나고 제주도로 돌아간 남편은

그날부터 1주일에 한통씩

보내던 편지를

거의 매일 일기처럼 적어 보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포가 하나 왔는데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걷지도 못하는 저에게

1,000개의 날개를 달아 이 세상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다며 보내온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남편의 청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결국 직장을 포기하면서

저를 보기 위해 서울로 이사를 왔고,

 

3년에 걸친 청혼 끝에

저는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85년 7월17일, 저희는 마침내 부부가 되었습니다.

 

★내 삶의 날개가 되어주는 당신께★

 

여보, 지금 시간이 새벽 5시30분이네요.

 

이 시간이면 깨어있는 사람보다

아직 따뜻 한 이불 속에서

단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더욱 많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집을 나서

살을 에듯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겠지요.

 

그리고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당신.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늘 힘겹기만한 우리 생활이

당신을 많이 지치게 하고 있네요.

 

내가 여느 아내들처럼 건장한 여자였다면

당신의 그 힘겨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으련만,

 

평생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는 그럴 수가 없기에

너무나 안타까워 자꾸 서러워집니다.

 

자동차에다 건어물을 싣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10원이라도 아껴쓰는 것이 전부라는

현실이 너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불편한 나의 다리가 되어주고,

 

두 아이들에게는

나의 몫인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16년 동안이나 당뇨로 병석에 누워계신

친정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당신입니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데

어머니께 딸인 나보다 더 잘하는 당신이지요.

 

이런 당신께

 

자꾸 어리광이 늘어가시는 어머니를 보면

높은 연세 탓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속이 상하고 당신에게 너무

미안해 남 모르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답니다.

 

여보,

 

나는 가끔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지친 모습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가엾은 사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평생 걷지 못하는 아내와 힘겹게 살아야 할까?”

 

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북받치지만

자고 있는 당신에게 혹 들킬까봐

꾸역꾸역 목구멍이 아프도록

서러움을 삼키곤 합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당신을 따라 나섰지요.

 

하루종일 빗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게 되지요.

 

그런데 며칠 전 겨울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날,

 

거리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부부 나이 정도의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우산을 자꾸

밀어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이 비를 몽땅 맞으며

물건 파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내가 느꼈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글귀로도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어요.

 

그때 나는 다시는 비 내리는 날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겠노라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답니다.

 

그리고 여보,

 

지난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당신은 결혼때 패물 한가지도 못해줬다며

당신이 오래도록 잡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나에게 조그마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지요.

 

그때 내가 너무도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얼마 못가 생활이 너무 힘들어

다시 팔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요.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은

그때 일을 마음 아파 하는데,

그러지 말아요.

 

그까짓 반지 없으면 어때요.

 

이미 그 반지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퇴색되지 않게 새겨놓았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해요.

 

3년 전 당신은

여덟시간에 걸쳐 신경수술을 받아야 했었지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 당신에게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나를 가리키며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요,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인데요”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바보처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떨구었어요.

 

그때 간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세요”라고.

 

그래요, 여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예요.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늘 나의 곁에 있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어린 시절 가난과 장애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늘 소원 했던

공부를 시작했지요.

 

적지않은 나이에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야학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어머니 저녁 챙겨주고

집안청소까지 깨끗이 해 놓고

또다시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 주는 당신.

난 그런 당신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

 

어린 시절 여느 아이들이 다 가는 학교가

너무도 가고 싶어 남몰래 수없이 눈물도 흘렸는데

이제서야 그 꿈을 이루었어요.

바로 당신이 나의 꿈을 이루어주었지요.

 

여보,

 

나 정말 열심히 공부해

늘 누군가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예요.

 

여보,

 

한평생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의 삶이지만

당신이 있기에 정말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바로 그 천사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늘 감사의 두손을 모으며 살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

 

 

 

[취재수첩]“다시 태어나면 제가 당신을 도울 게요”

 

- 17년째 자신의 발이 되어준 남편에게

‘사부곡’(思夫曲)을 보내온

임영자씨(39)는 서울 금호동의 조그만 주택에서

남편 김석진씨(45)와 중3인 딸 한나,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호세아와 함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집안 거실로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것이 싱크대입니다.

 

소아마비로 항상 앉아있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임씨가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싱크대의 다리를 없애고

바닥에 붙박이로 만든 것입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병든 어머니와 남편,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 주부로서의

알뜰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진 사연만으로 알게 된 임씨에게

어떻게 3년에 걸쳐 변함없이 구애를 펼 수 있었는지,

 

참으로 남편의 천사같은 마음씨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김씨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고

오히려 이를 묻는 기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장애자와 비장애자를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불편하다고 그게 장애자는 아닙니다.

 

장애자 역시 따뜻한 마음이 있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저는 아내에게 처음 편지를 쓰고

 

또 만났을 때도 아내가

 

장애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아내를 장애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내가 있어 더 행복합니다”.

 

현재 임씨는 매주 3일 정립회관에서 운영하는

‘노들장애인 야학’에

나가 하루 4시간씩 공부를 합니다.

 

30년이 지난 이제서야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내친 김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임씨와 결혼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제주에서 아내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12년 째 봉고차를 몰며 행상을 하고 있는 김씨.

 

바쁜 와중에도 남편은 뒤늦게

 

‘초등학생’이 된 아내가 안쓰러워

늘 아내의 발이 되어준답니다.

 

정말 이런 남편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는

늘 사랑을 받고만 있는 자신이 미안하다며

울먹입니다.

 

“여보, 나의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내 소원은 높은 구두신고

당신 팔짱을 끼고 걸어보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 힘겹게 살고는 있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랍니다.

 

다만 한가지

 

유일한 소망은 우리 부부가

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 나는 건강한 사람,

 

당신은 조금 불편한 장애인으로 만나

다시 부부가 되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예요”.

 

지난 연말 경향신문사로

우송돼온 임씨의 사부곡을 새해 벽두에

소개하게 된 것은,

 

조그마한 갈등과 불화를

극복하지 못해 갈라섰거나

갈라서려는 많은 부부들에게

 

이들의 변함없는

러브스토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최효찬기자

가끔은 다른 사고의 삶이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사는 분들을 봅니다.
그들의 삶이 때로는 부럽고 때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러한 삶이 모습이 가슴을 벅차게 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행복은 우리의 생각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속에 있다는 믿음을 다시한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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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세상사 2009. 12. 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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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 생]

 

흐 으 영~~~

내가 태어난 후 얼마 후에 나를 닮은 이상한 놈이 나와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놈과 여지껏 28년 간을 형제라는 기다란 인연의 줄로 같은 세상에서 같은 공기를 느끼며 살아왔다.

나를 낳아주었다는 어머니라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우리 형제 우리는 형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부모 따위는 없었으니까... 아니 최소한 나에게는 ..

내가 세 살 때 우리 외할머니에게 듣게 된 이야기로는 아버지는 일지 감치 다른 여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우리어머니라는 존재 역시 갓 태어난 우리 불쌍한 간난애 하나만 달랑 낳고 ,어린 나와 갓 태어난 내 동생을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그 사람의 삶을 가야만 했다고 한다.

모순이다.

난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때늦은 지금이지만...

심지어는 짐승도 자기 자식을 버리지 않는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우리 형제를 버렸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늙으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내 동생은 아주 심한 병을 앓게 되었다.

아주 두메 산골이였던 내가 살았던 곳은 그때 당시 전기조차도 들어오지 않았던

곳이기에 제대로 된 병원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동생의 병은 급기야 심각하게 온몸으로 퍼져갔고,

가까스로 목숨은 구했지만 그놈은 두뇌성장이 멈추어 버린 저능아가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바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항상 학교를 끝날 때 마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무런 표정도 짓지 못하고

힘들게 있는 그 놈을 난 그냥 무관심하게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도 그 놈 때문에는 난 항상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바보형제’ 라는 말이 우리 형제에게 항상 따라다니게 되었다.

하루는 그놈을 가만히 앉아서 쳐다봤다.

나를 보면서 실실 웃고 있기만 한 그놈이 정말 미웠다.

그래서 난 나도 모르게 그놈을 방한구석으로 밀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놈은 울지도 못하고 계속 실실 웃기만 하였다.

난 어린 마음으로 이런 상황이 너무나 싫어 대문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부모라는 작자에 대해서 증오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정말 싫었던 날들이 있었다. 그것은 내 생일과 어버이날 .그리고 크리스마스라는 빌어먹을 날 들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인생은 남들의 행복은 곧 나의 불행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나라는 존재. 그리고 그만큼 외로움의 골 역시 깊어갔던 시절의 흐름 때문에.. 내 곁에서 존재하고 있던 동생이라는 존재 역시도 나를 비관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럴 때마다 대문 앞 동네 개울에 가서..힘껏 돌팔매질을 해대었다.

큰 두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소매 끝으로 난 계속 눈물을 감추고만 있었다.

주변에서 우리를 불러대는 말들이 난 정말 싫었다.

바보형제래요..바보 형제래요..

제네들 엄마 아빠가 제내들 버리고 바람났지 ..아마.

말도 마요...소문에 듣자하니까 쟤네 엄마는 미군부대 앞에서 양색시 되었다고

한다던데...뭐...쯧쯧

하여간 종자들이 안 좋은 아이들이야. 얘..앞으로 재네들이랑 놀지 말아라..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다 똑같았다.

우리를 헐뜯지 못해서 안달이 난 모양처럼 우리 형제에 관한 모든 것은 그 동네에 끊임없는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참으로 우스운 건 나도 모르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사람의 소식을 그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버려진 아이’ 난 내 주위를 감싸고 있던 이런 편견들을 이기고 싶었다.

나만은 이런 나의 굴레를 벗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악착같이 공부했다...

정말 악착같이..

8살 때..

그리고 14살 때도 ..

그리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도

난 `악’ 이라는 나를 지탱해주는 오기만으로 훗날의 나의
성공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도 항상 내 주위에는 아직까지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생이 늘 붙어 다녔다.

그놈은 어렸을 때부터 잔병 치래도 많았다.

아주 어렸을 때 앓던 병 때문인지..면역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했던 것 같다. 가끔씩 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올 때마다 그놈이 늦게까지 안자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그놈에 대한 동정심과 형제간의 연민의 감정을 느꼈지만. 그것은 한 순간일뿐 항상 나에게는 감추고 싶었던 하나의 끄러움이였다.

어느날이였다.

흐....엉.. 아..`~~~~

왜...?

난.....왜.....하..악...교 못..가..?

쉽게 나오지도 않은 말로 더듬거리며 말하는 그놈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병신아!!너 바보니까 못 가지.!!! 너가 왜 학교 가냐..?

하지만 안쓰러움보다는 그놈이 더듬거리며 침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 더욱 분노를 느끼게 했다.

.......

내 이야기에 섭섭했는지..

어렵게 뒤돌아 앉더니 혼자서 조용히 가만히 쭈구려 앉았다.

난 갑자기 속으로 그놈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미안하다. 나 같은 놈이 형이라고 ...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지형아.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대문을 박차고 다시 개울로 나가 저주받은 내 삶에 대해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하루는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눈깔사탕이 눈에 띄길래 그놈 생각이 나서

그래도 동생이라고 두개를 샀다.

역시 오늘도 마찬가지고 내가 대문을 들어서면 가장 반기는 놈은 그놈뿐이다.

흐...엉..아...왔....어..?

그래...임마..자 이거 먹어라..사탕이다.

그놈의 눈이 갑자기 동거래 졌다.

그리고는 할머니를 막 부르기 시작했다.

하..알..머..니..!!!!

흐..엉 ...아.가 나 ..주..려..고 .사 ..탕 .사..왔...어..요...!!!

나....줄...려...고...

그놈이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것 같다.

그런 것이었다. 아마도 그놈이 나보다 더 저주받은 삶일텐데...

나 하나만 믿고 있는 놈인데...그놈이 이렇게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걸.

그렇게 좋은 아이인데...

내 하나 뿐인 동생인데..

저렇게 작은 사탕하나가 그놈을 기쁘게 하는 줄 알았다면.

난 그 날밤...

잠들어 있는 그놈의 옆에 가서

19년 만에 처음으로 옆에 가지런히 누워 그놈을 꼬옥 안아 주었다.

내 동생인 지형이를 ....

내동생인....

아이를..

`지형아 .하지만 형은 너에게 이렇게 대해줄 수 없어.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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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번호 080705번 님은 법학과에 합격하셨습니다.

면장님 댁에서 간신히 전화를 한 통 빌려쓴 후 합격 결과를 알아본 결과..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걸 알 수 있었다.

동네에서는 그 날 잔치가 벌어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인 그곳을 간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예전에 내가 그들이 그렇게도 기피했던 어머니는 양공주. 아버지는 바람둥이의 아들인 버려진 자식이라는 걸 잊은 듯 자신들의 일인 양 마냥 기뻐했다.

난..난..

가증스러움을 느꼈다.

가증스럽다.

세상이...

지형이 역시 할머니에게서 들어서인지 그 날도 역시 배실
베실 웃으며..

흐..엉..아.!!! 대...학... .생...되...는 ..거지...헤헤...

그놈의 축하방법 이였을 것이다. 난 아무말 없이 그놈에게 씨..익 웃어주었다.

.............

내가 처음 올라온 서울이라는 곳은 정말 내가 살던 곳이랑 너무 다른 천지였다.

돌아가는 세상..

돌아가는 사람들....

조금도 서로에게 여유라는 공간이 없던 그곳.

하지만 차가워 질대로 차가워진 나의 성격은 이런 거대한
도시 속에서
더욱 적응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대학생활...

그리고 연애...

공부......

그런 것들이 존재되어진 나의 대학생활은..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스스로의 안정됨과 존재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나 삶을 지배해온 20년 간의 긴장감들과 증오감들은 서서히

내 안에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학비는 어느 장학회에서 계속적으로 보내 주었고 성적우수 장학금이 지급되어...내 대학생활은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유를 누리게 되었다.

어느 날이였다.

지수학생!!!급한 편지 왔어!!

하숙집에 들어온 순간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화급히 다가서며

나에게 편지한통을 전해주었다.

`조모. 타계.13일 새벽4시. 정안병원’

난 다급히 시골로 내려가야 했고.

아주머니에게 며칠 간 못 돌아온다고 연락 오면 메모를 부탁드리며 태백행 기차를 탔다. 여든 여덟 까지

너무나 긴생을 고생하시며 살아오신 할머니.

내가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내게 부모님이였던 분.

난 오랫동안 말라버린 눈물이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솟구쳐 오르는걸 느꼈다.

할머니는 유언으로 나로 하여금 지형이를 잘 부탁한다라는 말씀과..

꼭 화장시켜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난 ..

할머니의 시신이 한줌의 재가 되어버린 작은 상자를 목에 걸고..

마을 앞 강가에 지형이와 조용히 나룻배에 올라탔다..

2월의 바람은 사람의 육신을 식힐 만큼이나 차가웠다.

하지만 정작 그 바람은 나의 병든 육신보다는 그 안에 가슴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아직 물안개가 걷히지 않은 그 곳의 공기는 들어 마실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상쾌함 들이 조여왔다.

"지형아.."

"할머니. 이젠 편안히 잠드시겠다."

".....

지형이 이놈 무척이나 슬프나 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걸 보니..

"할머니 ..하늘에 올라가셔서 무엇이 되실까..?"

......

"내 생각에 말이다. 구름이 되실 것 같아."

"그래서 항상 우리형제를 ... "

흑...흑..

"보살펴..."

흑흑.....

헉헉...

"할 머 니~~~~~~"

난 말을 잇지 못하고.. 그냥 한없이 울었다.

지형이 역시 나를 의지한 채 울기만 했다.

끝없이 흐르는 강물에 ..

떠내려가는 나룻배 속에서 찾아오는 조용한 아침의 적막을 깬 건..

우리 형제의 끝없는 사무침의 소리와 ...

그리고..

조용히 하늘로 퍼지는 아침 까치의 울음소리 뿐이였다.

할머니...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

이장님. 지형이를 좀 부탁드립니다.

이틀후면 사회복지 단체에서 지형이를 데리려 올 거에요..그때까지만...

지형아. 그곳에 가서라도 사람 말 잘 듣고. 항상 밥 잘 먹고 생활해야해.

형아 자주 올께

흐..엉..아.. 자...주...올..꺼..지..?

그래. 임마...

사내자식이 울긴 왜..울어. 임마..

우리 형제가 이거 가지고 울면 어떻게...?

내가 자주 갈께..알겠지..?

엉...알 ..았..어.....형...

훌쩍거리는 그놈을 뒤로하고 난 ..

그렇게 기차에 올라 탔다.

그리고 다시 난 거대하게 나를 조르고 있을 서울이라는 도시에 적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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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야. 축하한다!!!!너 자식 그럴 줄 알았어...!!

’꿈만 같은 이야기던가..내가 사시에 합격하다니...정말 꿈 인줄....’

학교와 주변에 축하의 소리와 만세소리가 들리었다.

이젠 내가 법관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25년 간의.. 꿈이였는데.

..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지선의 축하가 더욱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그녀를 위한 일들 이였기 때문에..

난 그 날.

4년 만에 기억 속에서 잊어져만 가는 내 동생 지형이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주변에서 내 동생 지형이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전혀 없다.

사랑하는 지선이 까지도..

지형이에 대한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래..

아마도 어쩌면 그렇게 감추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최지수’라는 존재에게서 `최지형’을 동일시한다는 건 나의 이기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에 몰두하면서 난 강원도 춘천에 있는 요양원에 다다르게 되었다.

4년 만에 본 지형이의 모습은 이젠 제법 어른이 되어 있었지만 많이 초췌해 보였다.  그리고 얼굴에 그늘이 너무 많이 보였다.

이곳에 온 후로 말 한마디 없었다는 간병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항상 창 밖으로.

보이는 너무나 유유히 흐르는 강만 바라보기만 했다는 이야기도

.........

너무나 죄책감이 들었다. 그놈이라는 존재가...

그리고...

나를 병들게만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형제는 무슨 이야기를 이어갈지 몰랐다.

지형아.형 .법관됐어..

흐..엉..아...잘..됐...어....억....

오랫만에 그놈의 앳띤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렸을때 그렇게 흔하던 사탕 하나 가지고 좋아했던 그 모습.

12월의 바람은 정상인인 나에게도

추위를 느끼게 했다.

게다가 이곳은 주변에 호수가 많아서 강바람이 만만치 않았다.

"지형아 춥지.자.아..들어가자."

"흐..엉...아...조..금..만 있..다..가...."

"그래..그러면..."

난 지형이의 작은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서울 이야기도...

"참 지형아..이젠 너 생일이잖아..뭐 갖고 싶니..?"

......

"뭐..책..컴퓨터.? 뭐 사줄까..?"

"흐...엉...아..."

그놈이 나에게 어렵게 무엇인가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우.. 리.."

"옛..날..처..럼"

"같..이"

"살..자..."

흐.. 엉..아..

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놈을 계속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형이가 기다리는 대답을..난 할 수 없었다.

미안해. 지형아..

난 그럴 수가 없어. 형이 겁쟁이야..

미안해...

미안해...

................

"부르셨습니까..? 부장검사님.."

"그래 최검사. 이번에 자네 승진 때문에 신원조회를 부탁했더니.."

"동생이 하나 있더군"

......

"그런데 신상기록서에는 왜 자네 이름 하나만 썼지...?"

.......

"자네 무슨 문제 있나...?"

아...아닙니다..

난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부장님 방문을 힘없이 나섰다.

그래.

아직 내 곁에 있는 아내까지도 모르는 존재.

내 동생...

지형이...난 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될려고 한 건 아닌데....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호출이 왔다.

집이다.

급한 연락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야 왜...?"

"여보.."

"이상한 전화가 왔는데.."

"당신을 찾더니 동생이 위급하대요."

"참 ..웃겨가지고."

"당신 있지도 않은 동생이 위급하다니.."

"그래서 아니라고 하니까..."

"맞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상한 전화인 거 같아서.."

"당신에게 호출했어요."

뚝............

하늘이 정지되었다.

"경비실이죠!!!"

"예 최지수 검사입니다!!!"

"차 좀 부탁드립니다.!!!"

"예..좀 빨리요!!"

난 정신 없이 춘천으로 향했다.

이놈을 망할 놈의 차 왜 이렇게 느린거지..?

눈물이 막 쏟아진다.

난 내가 그렇게 소중했던 두 사람을 내가 죽이고 있어.

할머니도 그렇게 ..

그리고 지형이도..

끼~~~~~~~~익~~~~~~~~~~~

"야 새꺄!!!!!!!"

"미쳤어!!!!"

"눈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거야!!!!!"

"죄송합니다."

............

그곳에 도착할 무렵은 한 한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였다.

그리고 지형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잠들고 있는 지형이와.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있었고.

예전에 할머니 때처럼 심한 약품냄새가 방안을 진동하고 있었다.

"최지형씨는 면역성이 아주 약하군요."

"그래서 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밝히지 않았으니."

"너무나 늦게 발견한거죠.."

"그 고통을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사라는 작자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

"우리나라 최고로 촉망받는 검사 최지수야!!"

"당신 죽고 싶어!!!"

"죽기 싫으면 .."

"내 동생 살려내!!!"

"살려내!!"

"새꺄!!!"

그리고는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나 보다..

지형이가 누워있는 몸에 기대어 엎드려서 잠깐 잠든 사이..

지형이는내가 온 줄 알고 그냥 웃고만 있었다.

"흐..엉...아..."

"그래.."

"지형아.."

"괜찮어...?"

"응...헝헝...."

"헝...아...."

"보..고 싶 ..어 쪄...."

.......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놈의 자식은 나 같은 놈을 아직까지 형이라고 불러주다니..

우리 지형이를 우리 지형이를 ..

내일이면 다시 해가 뜨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다니...

하나님 ...

부탁드립니다.

제발 우리 지형이를 살려주세요.

제발........

"헝...아...나...강..보..고 싶..어..."

"그래도 되겠니..?"

난 너무나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

지형이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이야기했다.

"흐...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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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아... "

"바람이 차구나..."

난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강을 바라보고 있는 지형이를 바라만 보았다.

"헝..아..."

"나 ..어..제 꿈..에서...할..머니...봐쪄."

"응..그렇구나..?"

"좋았겠구나. 뭐라고 하시던..?"

"음...엉.아..말 ..잘들...으래...헝헝.."

야 이 바보 같은 자식아...내가 무슨 형이라고 나 같은 놈이 무슨 형이라고."

"그래...그렇구나."

"엉아...할..머..니..도 춥겠다....그지..?"

"그래.지형이는 안춥니..?"

"엉... 엉..아..한..개도 ...하 ..춥따..해해,,"

지형이는 자신도 버틸힘도 없는 지..

내 어깨에 기대에서 힘이 다빠진 눈으로 강 하늘에 석양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아주 힘겹게..

자신의 끝을 느끼는 듯이 힘겹게 이야기하고만 있었다.

"흐..엉...아....나...구름 ..되 고 싶어..."

"왜...?"

"할...머..니..랑 ..같이 ...살려...구..헤헤.."

"그래.."

"흐..엉...아도 구...구름..될..꺼...지?....."

"흐...엉..아랑..나...랑.. 하..할..머..니.랑"

"예.옛..날..처럼....가.같..이 살자.."

"우...리 ..시.골..에서.. 처.처럼..."

"응....엉...아...""

지형이의 목소리가 가면 갈수록 작아지고 있었다.

"헝...아..."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같.............이...."

"헝..아..."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같이.."

"같이.."

"같이.."

.....................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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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삶이 그 결과를 향해 나가가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삶의 정답이 아닐수도 있다.
알면서도 우리는 결과를 갈망한다.
결과에 무관한 삶을 살아갔던 선조들을 우리는 진정으로 존경의 눈을 보이면서도 결국,결과 지향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자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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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2009. 12. 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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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 밀스라는 어여쁘고 늘씬한 영국의 모델이 복잡한 런던의 거리에서 길을 건너다 그만 경찰의 오토바이에 치어 다리를 다쳤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그녀는 왼쪽 무릎 아래가 잘려나간 자신의 다리를 보고 다시 한번 기절을 했다.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물 넷. 쭉 뻗은 다리를 뽐내며 당당하게 무대에서 유명 디자이너의 새옷을 선뵈던 그녀의 모델 로서의 모습은 이젠 끝장이 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상심은 단지 두 주간뿐이었고 그녀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그녀는 상처가 아문후 곧 의족을 해달고 이를 악물로 걷는 연습을 했다. 얼마후 남이 보기엔 조금도 절룩거리지 않는, 그러니까 아무도 그녀의 다리가 의족이라는 걸 모르게끔 되었다.

 

그녀는 그길로 코소보와 베트남으로 오가며 전쟁중에, 또 지뢰에 다리가 잘려나간 수많은 불구자를 찾아 다니며 희망을 주게 되었다. 그녀는 기금을 마련하고 다리가 잘려나간 수많은 전쟁 희생자들에게 의족을 마련해 준 것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의족을 달아준 사람은 수백명에 달한다. 지금 그녀는 의족 디자이너로 개개인의 실제 다리와 똑같은 의족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그녀 자신의 다리도 만져보기 전에는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두 다리가 똑같아 보인다.

 

헤더 밀스는 “내가 만일 아직도 성한 다리를 갖고 있다면 얼마 안남은 모델의 전성기를 마감하며 어떻게 하면 살을 더 뺄까?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벌까” 하는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거야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리를 잃고 고통과 절망에서 일어나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새 희망을 주고 있으니 이는 정말 대단한 일이야’ 라며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보람있게 여기며 산다.

 

헤더 밀스의 스토리를 보노라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녀의 사고가 하느님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불행도 마음먹기에 따라 새로운 생의 전환점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자질구레한 근심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평안함이
느껴진다.

 

헤더 밀스는 요즘 모델로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녀의 예쁜 얼굴과 멋진 몸매에 아름다운 영혼이 깃든 모습은 자랑스럽고 당당하기 까지 하다.   그래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까지 그는 당당함을 마음에 심어주는
것 같다.

 

김진희 <남가주한국학원 그라나다힐스지역 한국학교 교장>

5-19-2000 미주 중앙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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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불행하다면
당신말이 옳다.당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니까..
지금,당신이 행복하다면
역시,당신 말이 옳다. 당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삶의 상황과 삶의 현실에서 절대적인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생각만이 존재한다. 이 세상은 항상 불행과 행복이라는 동전의 양면으로 삶이 굴레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만,어느쪽에 집착하고 어느쪽에 비중을 두는 지는
각자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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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생강 2009. 11. 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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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축복으로 (이글은 유니텔 카톨릭 통신 동호회 이호경님이 올리신 글입니다)

 

 

어떤 마을에 큰불이 나서  모든 가옥을 태워 버릴  기세로 번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는 현자로 알려진 수도자가 사는 움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에게 제발 기적으로 불길을 잡아
주도록 애원했다. 하지만 수도자는 시큰둥할 뿐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애가 탄 마을 사람들은 수도자에게 통사정을 했다.
“제발, 불 좀 꺼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수도자는 말없이 움막으로 들어가더니,  평소에 엮어 두었던 갈대바구니 여러 개를 손에 들고 나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어 놀라고 어리벙벙할 뿐이었다. 그러자 수도자가 말했다.
“지금쯤 마을이 몽땅  타 없어졌을 거요.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숯을 긁어모으도록 하시오. 집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을 터인즉.”

군중은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당신 지금 우리를 놀리고 있는 거요?”

“비극이란 거꾸로 뒤집힌 하느님의 축복인 거요.”
수도자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이미 겨울이 목전에 닥쳐왔으니, 인근의 수많은 마을은 숯이 절실하게 필요할 거요. 그들에게 숯을 팔아서 돈을 넉넉히 벌어들이시오. 그 돈이면 훨씬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 거외다.”

사람들은 돌아와 수도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마을에 돌아오니 정
말로 집은 몽땅 타서 없어진  상태였다. 그들은 저마다 숯을 주워모았고, 그것을 인근 마을로  가져다 팔았다. 그리하여  번 돈으로 한결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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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두려워할 필요도,불행에 좌절할 필요도 없다.
두꺼운 호도껍질속에 실한 알맹이가 있듯이 삶의 과정에는 이와같인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긴밀하고 친밀하게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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