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생강 2011. 7. 1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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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있는가.
있을지도 모르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극이 있기에 행복하고 조화롭다.
남자가 있기에 여자의 존재가 소중하고,
악이 있기에 선에 대한 갈망과 고마움이 여실하다.

삶이 있다는 것은 죽음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 가치가 있다.
무한한 것이 없다는 것 자체가 바로 유한한 것들의 가치가 돋보이는 것이다. 행복하고 싶다면 항상 뒤에 죽음의 사신이 다가오면서 당신의 삶에 점수를 메기고 있다고 생각하라. 순간 순간이 소중하고 순간 순간이 보람차게 느껴질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이 왔을 때 아무도 자신의 기억해주지도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는 현실이 더욱더 슬플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모를것이지만, 죽음의 문턱에서는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순식간에 잊어가고 있고, 부담스러워하는지.. 삶이란 주고 받는 영혼의 교감이지 사고파는 상거래가 아니지만,
진정한 영혼의 교감을 느끼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물질에 물들어있다.   조용한 죽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외로운 죽음이 아니라.


가끔은 하늘을 보자.
구름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그리고 방금 지나온 삶의 흔적을 다시금 투영해보자. 이는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다.
돌아보는 관조적인 사고가 습관화되는 것만이 우리의 현실적인 삶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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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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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2011. 3. 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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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

1막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 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城과도 같습니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 합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2막

어느 때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라고.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3막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합니다.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니까요.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4막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던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요,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죽고 난 뒤 보다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듯이
복은 스스로 지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맑고 향기롭게
날마다 복 짓는 좋은 날 되소서...

<모셔온 글>

우리 모두는 탄생과 더불어 죽음을 향해서 한발씩 내딛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영원히 살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예외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가 저승길에 올라서 염라국에 들어가기 전에 천당과 지옥으로 방향을 정한다고 합니다.
지금 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가지고......
일상의 작은 배려가 우리의 죽음 이후의 삶을 보장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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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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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세상사 2009. 11. 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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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인터넷 굳뉴스에 있는 내용을 다시 옵겨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혜화동성당 나바오로신부님의 위령성월 주일강론(98.11.1) 말씀입니다.

이미 많은 분이 알고 계신 내용이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5명의 사형수]

 

사제서품 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사제서품을 받고 첫 보좌신부로 있었던 혜화동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26년전 혜화동 본당 보좌신부로 있을 때 어느 날 교도소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신부님이십니까? 저는 서대문 교도소의 신자 교도관인데 지금 즉시 교도소로 와 줄 수 있으시겠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가 무얼 잘못해서 교도소로 오라는 거요?" 하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전화로는 극비이므로 말할 수는 없고 오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때가 1972년도 5월 어느 날 오전 10시경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교도소 정문에 도착하자 전화를 건 신자 교도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잡수시고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하고 교도관이 말했습니다.

 

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제소자들 중에 환자가 있어 병자성사나 병자영성체를 요청하는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5명의 사형수가 집행되는데 그 중에 2명이 천주교 신자가 있어 신부님을 부른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사형집행 말을 들으면 놀라겠지만,

그 때에는 병아리 신부로서 교도소 가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인데,

더구나 사형 집행을 참관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곧 이어 안내를 받아서 들어간 곳은 사형 실이었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약50여 평 남짓한 작은 방에 30여명의 교도관들이 경호를 하고 있었고 단상 위에는 8명의 참관인이 있었고, 한쪽 끝에는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제가 늦게 참석하였기에 10시부터 시작된 사형 집행은 이미 첫 번째 사형수가 심문절차를 밟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제자리에 앉자마자 첫 번째 사형수를 보고 얼마 후에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나 생각하면서 그의 얼굴을 보니 창백하다 못해 경련을 일으키면서 살려 달라고 소동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정 사정없이 절차가 끝난 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교수형은 목을 메달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사형수도 들어와서 절차를 밟고 나서 교수형 처하기 직전에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하고 외쳤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김일성을 찬양하고 공산주의 찬양하는 말입니다.

그날 공교롭게도 5명이 모두 다 간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것을 외치면서 죽는 사형수를 볼 때 `공산주의가 무엇이 좋아서 저렇게 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그의 신조로서 그렇게 했을 것으로 봅니다.

 

세 번째 사형수 차례가 되었을 때 똑 같은 절차가 끝나자 앞에 두 사람이 너무 힘겨워 하면서 마지막 죽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집행 장은 느닷없이

  "당신 뭐 할말이 없느냐? 여기 목사님도 계시고 저기 신부님도 계신데 하느님이라도 믿어 볼 마음이 없느냐?" 하고 제안을 하더군요.

저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기분이 몹시 안 좋았습니다.

네가 죽는 마당에 천당이 있다던데 혹시 아냐 하느님이라도 믿어서 천당이라도 갈지.

지옥이 있다던데 혹시 하느님이라도 믿어서 천당이라도 가고 싶지 않느냐? 는 식의 말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그 세 번째 사형수가 대세라도 달라고 하면 내려가서 주려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 후 사형수는 그런 권고를 한 집행 장을 빤히 쳐다보면서

  "뭐라고! 하느님을 믿으라고! 나를 죽게 하는 하느님을! 그런 존재는 필요 없다!” 하면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하느님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도 결국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자기의 죽음을 저주하고 죽었습니다.

그러한 그 사형수의 죽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참으로 울적한 마음으로 세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곧 이어서 네 번째 사형수 집행 안내방송이 나왔고

네 번째 사형수 차례가 되자 신자 교도관이 저에게  

  "이번 네 번째 사형집행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영세한지 3개월 됩니다. 제가 대부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교도관은 아주 열심히 제소자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으며 대자도 수 백명 두었다고 합니다.

 

  "신부님 사람들 죽는 것 보셨지요.

   저의 대자도 저렇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야 되는데. 기도해 주십시오…."

 

네 번째 죄수가 들어왔습니다.  

절차를 다 끝내고 똑같이 "마지막 할 말이 없느냐?” 하는 집행장의 질문에 사형수는 고개를 들고 단상 위를 치켜보다가 사제 복을 입은 저를 보더니

  "저 신부님을 제 앞으로 오게 해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앞으로 내려갔습니다.

  "신부님, 마지막으로 고백성사를 보겠습니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록 그 네 번째 죄수는 말을 안 하더니 그 후 떨리는 목소리로

  "신부님 고백성사를 볼 수가 없습니다 .... 떨려서 안되겠습니다.”

  "영세 받은 지 3달밖에 안되었고, 의향으로 불렀으니 고백을 안해도 되겠습니다. 정말로 회개하시고, 이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께서도 용서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성체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성체를 모신 후 그 사람은 저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1-2분이 또 지났습니다.

집행 장이 몇 분을 더 기다려 주더니,

  "신부님 그 사람의 손을 놓아주세요. 시간이 없어 빨리 진행해야 됩니다."

그 후 한 3분이 지나 제가 손을 놓았고 죽음직전에는

  "신부님, 대부님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조선인민민주주의 만세도 부르지 않았고 살려 달라고 발버둥치지도 않았습니다.

고백성사와 성체를 영한 그가 숨을 거두자 진중 하게 지켜보았던 교도관 대부가 저한테 와서

  "신부님 잘 되었습니다. 대자가 저렇게 마지막으로 잘 가길 기도해 왔는데 하느님이 도와주셨습니다."

 

3-4시가 되었을 때

마지막 다섯 번째 사형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다섯 번째 사형수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작은 창문을 통하여 보여지는 감옥으로부터 사형 집행실 까지는 불과 20여 미터밖에 안되었지만 줄을 맞추어 2-30명의 교도관들의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4명의 사형수들은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순간부터 소리소리 지르면서 "난 안돼요” 그랬는데 다섯 번째 사형수 차례가 되자 다시 신자 교도관이 다가 오더니

 

  "신부님, 저 사람은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사람은 교도소 생활 10년을 했으며 이미 3년전에 영세를 받아

   신자로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수도자처럼 살았습니다.

   그 사형수 때문에 많은 제소자들이 영세를 받게 되었고

   사형수들중 2/3가 카톨릭 신앙으로 귀화했습니다." 라는 말을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밖에 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감옥 문이 열리면서 그가 나오자마자 자기를 호위한 30여명의 교도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앞의 네 사람하고는 감히 비교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도관님 안녕히 계십시오. 그 동안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저는 지금 떠나지만 후에 뵙게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 저 사람이 사형수인지? 김포공항에서 외국에 나가는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이윽고 그가 사형 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정말로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절차를 끝내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에게도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느냐고 물을 때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는 언젠가는 오늘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 준비해 놓은 유서를 읽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의 유서, 유언이 너무 감동적이었기에 아마 모르긴 해도 그의 말 가운데 단어하나 토시하나 빼놓지 않고 지금 그대로 이 자리에 전해 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한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도소에 와서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표현하는데 이 사람은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제 저는 조금 후에 교수형에 처해 집니다.

 저는 저의 죄과로 죽어 마땅합니다.

 저를 하느님이 용서하시고 저를 하느님 나라로 불러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저는 죽어갑니다.

 이제 제가 죽는 순간 그러나 제가 죽는 순간 하느님 곁으로 갑니다.

 주님 저를 용서하시고 제가 잘못한 모든 죄를 모든 이에게 사죄 드립니다

 끝으로 사형수의 주제 넘는 말 같지만 저의 죽음을 지켜보시는 여러분께서도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시려거든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제가 하느님을 만난 후부터 가장 소중하게 가졌던  

 이 기도 서를 저의 중3 딸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잠시 후에 운명하거든

 저의 두 눈을 빼어서 실명한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그분은 유언을 마치고 저를 불러서 지난날의 죄를 고백성사로부터 보았고 제가 성체성사를 영하여 주었을 때에는 그가 법으로 입증된 사형수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이미 가있었던 천사의 얼굴이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체를 영하고 나서 마지막형을 집행하기 직전에 그를 묶게 되었습니다.

손과 다리, 발목을 묶어 들어서 형틀로 옮기는 도중에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포승줄로 묶여 있는 내가 손으로 주머니에서 무얼 꺼낼 수 없으니까 꺼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교도관이 주머니에 넣어 꺼내 보니 묵주였습니다.

손을 합장을 하더니 묵주를 손에 감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교도관이 손에 묵주를 감아주었습니다.

  "됐습니다. 집행하십시오."

 

죽기 전에 그는

 

 "예수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3번 큰소리로 외치면서 조용히 운명을 했습니다.

 

그가 숨지자 사방도 조용해졌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던 참관인들, 교도관들이 모두 고개를 숙여 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시기에 카톨릭 신앙이 무엇이기에 생명의 죽음까지도 저렇게 극복할 수 있는 참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는지…

다섯 번째 사형수처럼 정말로 죽음을 의연하게 맞을 수 있을는지?

우리 삶과 신앙의 토대를 살펴봅시다.

 

특별히 11월 위령성월을 맞아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들의 죽음도 묵상하고 준비하는 시기가
되어야겠습니다
.

이것이 곧 위령성월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사형수처럼 그런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가 되어야겠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한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도소에 와서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곧 죽어 갑니다.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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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의 안전함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내일을 주시라는
열망의 기도를 드려햐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맞은 오늘은 그 누군가가 그토록 갈망하던 그 날 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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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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