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의 똥침 2011. 10. 2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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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기와 재미를 없앤다.
아직 자신의 적성을 드러나기도 전에 부모들이 직업을 정한다.
물론 자세나오는 직업군이다. 판검사.변호사, 의사, 회계사, 교수 등
아이들의 적성을 절대무시하고 부모들의 바램만이 절대적이다.

2.공부의 기술 연마과정을 없앤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자신만의 공부방법에 익숙해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부모들은 모든 계획을 학원에 맞긴다. 초등시절의 종합반수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더하여 수면시간과 예복습시간까지 부모가 정하고 독려한다.
이쯤되면 아이들이 미치지 않으면 오히려 고맙게 여겨야 한다.

3.강제된 노력.
매사에 노력을 중요하다.
그러나 강제된 노력만큼 부작용이 큰 것은 없다.
초중등시절에 어느 정도 했거나 아주 잘 했다고 생각되어지는 아이들이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반대로 초중등시절에 그저그랬던 아이들 중의 일부는 고등학교시절부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낸다.

이것이 바로 강제성이 주는 문제의 발현시점이다.
어린 나이에는 질책과 꾸지람이 무서워서 따르지만, 어느 정도 반항기에 힘이 실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아이들이 달라진다.
오히려 공부에 무관심한 자세가 부모에게 가장 쉽게 반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강제된 노력의 말로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천재는 아니더라도 두각을 나타내는 학습자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위의 상황과 반대로 하면된다.
공부에 동기를 부여하고, 과도한 욕심을 금한다. 새로운 학습에 흥미를 없애는 과도한 선행은 필요악이 아닌 진정한 악이다.
공부기술을 누군가가 무작위로 제공하는 무식한 행위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없애는 첩경이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통해서 공부방식을 찾아가도록 기원하고 지지해주자.
강제로 시험기간에 밤을 새우게 하고, 격한 어조로 아이들을 반강제적으로 책상에 앉히는 불필요한 부모의 노력은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노력을 일상에서 보여주도록 부모가 동참하는 공부문화를 만들고 노력은 자생을 위해서 부모와 함께 시험기간 주말에 도서실학습이나 거실학습을 연출해보자. 부모의 1%의 노력이 아이를 최소한 10%변화시키고 아이들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한다.

이제 아이들은 한송이 꽃이나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그 피는 시기와 성숙되는 주기는 모두 다르지만,하나 같이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명한 부모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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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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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생강 2010. 3. 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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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책을 읽거나 퀴즈를 푸는 것을 공부와 연계시켜서 생각하는 아이가 있는 가 하면, 항상 공부를 퀴즈푸는 식으로 호기심을 만족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아이도 있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담석증으로 입원한 애주가에게 맥주 2병을 주면서 소변을 위해서 마시라는 병원측의 배려?가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2박스의 맥주도 개눈감추듯 하던 애주가가 이 2병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약으로 먹으려고 하니 정말 안넘어가더라는 것이다.
같은 술이자만 어떤 심리적인 상태인지에 따라서 좋은 친구이자 산해진미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또 독약이나 극약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예전 우리의 어린 시절에 술상무라는 직책이 있었다.
어르신들?의 만남에 흥을 돋구고 어르신들 몸에 무리가 되는 술을 대신 마셔주는 직책이었다고 생각된다. 술상무는 대부분 술을 아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선호했다고 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1년이상 술상무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극히 적었다고 한다. 적게는 수년, 많게는 십수년을 술과 함께 해온 사람들이었기에 다소 의아한 결과였지만, 역시 심리적인 요소가 주된 요인으로 생각된다. 
같은 술이더라도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사람과 함께 마시느냐에 따라서 몸이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다.

공부도 마찬가지도 동일한 공부도 어떤 자세에서 공부를 받아들이느냐가 공부에 대한 열정과 지속성 그리고 성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학생들은 공부를 재미와 흥미위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경쟁의 수단이나 출세의 방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강력한 공부의 엔진은 불굴의 의지나 각오,다짐,강한 정신력 따위가 아니다.지속적인 재미와 흥미의 재생산 및 여유로운 사고이다.

주입식교육, 선택권이 상실된 교육, 시험일변도와 성적일변도의 교육, 강요된 공포분위기의 교육 등은 재미있는 공부와 대립적인 요소다.

성적은 공부의 산물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부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면 지속적으로 공부에 몰입하게 되고 이러한 몰입의 결과 공부시간과 공부의 질이 높아진다. 이러한 과정은 당연스럽게 성적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성적결과는 부분적이나마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된다.    문제는 공부를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 하는 중간이하의 학생들인데 그들에게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남은 의욕마져 상실하게 하기 보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공부가 재미있는 삶의 일부가 될 수있다는
멘토링이 필요하다.

오직 인내와 끈기,강인한 정신력 만으로 공부를 채근하는 일은 지나친 고정관념이다. 기성세대 역시 공부에 대한 재미있는 기억보다는 살벌한 전쟁의 기억만을 지닌 경우가 많을 것이다. 따라서 결과만을 지향하는 성적을 위해서 자녀들을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다. 총을 한자루씩 쥐어준채로.... 그러나 이런 일상은 서로에게 고통이다.

재미와 흥미 그리고 지적이 호기심은 모든 성장의 원동력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첩경이다.  수동적인 공부,강요된 공부,경쟁을 강제하는 공부는 일시적인 성과가 있더라도 공부를 원수처럼 대하게 되고 결국에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길로 길들게 하는 방식이다.

경쟁과 사회적인 입신출세를 위한 수단이 아닌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면서 재미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갖게 유도하고 함께하는 것만이 지속적이면서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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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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