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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노인의 불행한 인생사
    뒤죽박죽세상사 2013. 4. 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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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특별한 삶을 살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돌아다니길 좋아했다.

    군인으로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비기도 했다.

    가정에 소홀했지만,

    가정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그가 사랑하는 딸이 먼 도시로 결혼을 해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또 다른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잡일을 해주면서 삶을 이어갔다.

     

    어느 날 소식이 들렸다.

    딸이 위독하다고

    그는 서둘러 딸이 있는 도시로 갔다.

    딸 아이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병명도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 곁에는 이미 남편이 떠나고 없었고,

    오직 2살박이 사내아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딸이 젊은 나이에 이 세상 삶을 마감했다.

    그는 막막하고, 어질해졌다.

    그런데, 돌아보니 2살 박이 생명이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잠시 돌아보며 생각해보건데

    이 아이가 자신에게 용기와 삶의 온정을 심어줄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를 강물속에 떠나보내고

    자신의 마음은 그 곳에 둔 채

    아이를 데리고

    지금 거쳐하고 있는 변두리의 시골마을 오두막으로 와서 보니

    삶의 생기가 살아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열심히 우유를 배달하고, 마을의 잡일을 하면서

    이 사내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잔병치레없이 잘 자랐다.

    온순하고 준수했으며 그를 잘 이해했다.

    이제는 이 아이가 딸아이가 자신에게 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는 간만에 나른한 오후를 뒤로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장구경을 나갔다.

    흥분과 즐거움 그리고 새로움을 접할 수 있는 들뜬마음에

    아이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한참을 뚝방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아이가 그의 손을 잡아서 끌었다.

    잠시 눈을 돌려보니

    한 커다란 개 한마리가 탈진과 모진 매로 인해서

    수풀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한사코 그 개에게로 다가가려 했다.

    잠시 아이를 만류하다가 어쩔 수 없이 가까이 가서 보니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한 개지만,

    험한 삶을 살아서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었고,

    심하게 탈수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가 너무나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보자.

    그는 하는 수 없이

    장으로 구경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개를 끌다시피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방 한구석에 자리를 마련하고 상처를 씻어주고

    간단한 먹을 것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란다.

    나머지는 저 개에게 맡기자.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자

    개는 기력을 회복했다.

    가족이 1명 더 늘었다.

    그러나 그의 힘은 더욱 줄어만 갔다.

     

    이제는 우유배달을 하는 것이 힘에 부친다.

    그나마 이제 큰 트럭마져 마을에 들어와서 그의 생활터전을 앗아간다.

     

    어느 날 아침

    마찬가지로 우유를 배달하려고 집을 나서는 데

    몸이 거의 회복된 개가 우유배달 수레앞에 우뚝 서있다.

    아마도 자신이 이 수레를 끌고 가겠다는 의사인 것 같았다.

    아직은 몸이 성하지 않아서 말렸지만,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그냥 오늘 하루만 맡기고 내일이면 이내 힘들어서 그만두겠지

    하는 생각에  배달 수레에 끈을 묶어서 개의 몸에 걸쳐준다.

    오늘 부터는 배달을 셋이한다.

    그와 그의 손자 그리고 개.

     

    이제 몸은 나날이 야휘어간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이제 10살을 훌쩍넘어서서 제법 어른티가 난다.

    그리고 개는 이제 완전한 성견을 넘어서서

    이제 장년의 풍모를 보이고 있다.

    이것들이 자리를 잡아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노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가난하지만, 세식구가 나란히 식사를 하고,

    계절의 변화를 같이 공유하면서

    오후의 나른함을 같이 즐기는 삶.

    노인에게 한 가지 바램과 걱정이 있었다.

    바램은 손자가 작은 토지라도 소유하면서

    살아가는 안정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걱정은 손자가 남몰래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림으로는 생활이 힘들고 그 길은 그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배고픈 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그 꿈을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해 겨울은 유달리 추웠다.

    그는 몸져 누워있었다.

    우유배달과 간단한 요리 등은 모두 이제 15세가 된

    손자와 개의 몫이었다.

    아무런 불평없이 묵묵히 배달을 하고 평상시와 같이 옆에서

    재잘되는 손자를 보니 막연히 이제는 다 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몸은 더욱 아파온다.

    젊은 시절에 제대로 돌보지 못한탓인 것 같다.

    게다가, 더욱 힘든 것은 그 자신이 이제는 짐이 되고 있다는

    자책감이다.

     

    크리스마스를 얼마남지 않은 밤.

    그는 직감한다.

    이승에서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서서히 숨을 몰아쉬면서

    아이를 한번 쓰다듬고,

    개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손자 네로야 행복해야 한다.

    파트라슈 네가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했단다.

    그렇게 그는 떠난다.

    그해 성탄절의 종소리를 듣지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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