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사무실안에서 전화기를 들고 무엇인가를 메모를 하고 있고, 한 평상복 차림의 여성이 공원에서 전화기를 들고 제스쳐를 해가면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생각할것이다.
남자는 열심히 회사의 업무에 열중하고 있고,
여자는 단순히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있다고.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남자는 자신의 휴가계획을 위해서 여행사와 일정을 조절하는 중이었고,
여자는 전화상으로 거래고객과 마지막 협상중이었다.
우리의 삶이 공간과 여울리는 행동이라는 상식과 편견을 뛰어넘어서 진행되고 있다. 이제 상식은 아주 작은 범위의 일정한 지역적인 지식정도일 뿐이고, 상황은 그 상황에 맞는 진실이 존재한다.
다수의 생각이 주는 오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흔히 숫자가 정의나 옳음이라는 편견을 지니고 있다.
정의로움과 공정성은 숫자와는 무관하다.
다수는 단지 소심하고 개성없는 개별인간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계기가 될 뿐이다.
다수에 대한 생각조차도 이제 희미해진다.
관심있는 소수가 다수로서 위장되기도 하고, 침묵하는 다수는 적극적인 소수를 묵인함으로써 소수가 다수를 대변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개인적인 일이든지 아니면 조직내에서의 일이든지 성과만이 그 결과를 합리화해주는 지표가 된다.
세상은 스마트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장소적인 개념은 이미 없어지고, 결과와 조화 그리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지역적, 시간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삶의 속도는 이제 그 의미가 없이 동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지구촌은 두가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철저하게 스마트한 경향을 심화나
정반대로 아나로그 향수문화의 복귀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 쪽이 승자가 아니라. 이 양자는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
속도감은 필연적으로 정적인 심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개별적인 선택은 철저하게 우리의 의도와 의지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