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생강 2017. 3. 3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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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추함의 관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이 때로는 표피적이고 찰나적일 수 있고, 추함도

때로는 아름다움으로 성장하는 한 단계일 수 있다.

구겨진 인상과 표정 그리고 오물과 버림받은 

장신구들도 때때로 아름다움의 상징에서 기원할 수 있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테르담에서 노테르담의 곱추는 

추함과 사회의 그늘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에 반해서 에스메랄다는 상냥함과 미모를 지닌 거리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그녀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공간은 행복해지고, 

그녀의 모든 행동은 빛을 발한다.

흉칙한 외모의 카지모도가 나타나면 모두가 돌을 던졌지만,

 오직 에스메랄다만은 따스한 말을 건네주었다.

곱추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추물이지만, 

마음깊히 한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곱추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미묘하게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응원하게 만든다.

반면 에스메랄다는 시선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축복받은

미녀지만 그 매력이 원인이 되어결국에는 배신당하고 

버려지는 불행한 여인으로 추락하고 교수형을 당한다.

곱추는 그녀를 구해내지는 못하지만, 그녀를 모략한 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음으로써 그녀와 함께하게 된다.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것은 외양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태도와 심성의 문제일 수 있고 이 양자는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가꾼다는 말은 어찌보면 추함을 감추려는 

처절한 모습일 수 있고, 때로는 심성보다는 보여주기에 

충실한 태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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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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