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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그러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재회: 삶은 그 누구도 모른다.
    마늘과 생강 2010. 5. 1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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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학교 때, 곡식이 떨어져 가는 봄쯤이면, 도시락에 담아갈 수 있는 음식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밀가루 개떡’도 가끔이지 자주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친구들과 떨어져 몰래 먹어야 했지만요. 어느 제삿날 다음날 온 세상이 내 것 같았습니다. 하얀 밥에 생선과 나물을 반찬으로 담아 갔으니까요. 그렇지만, 결국은 그 도시락을 친구들과 같이 먹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또 그 다음 날이 걱정되었으니까요. 저는 소심했나 봅니다.

     

    도시락(없을 때가 훨씬 많았지만)과 옷차림은 비례했고, 연세 많으신 선생님은 그 모습을 놓지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결국 뒷산 바위 뒤에서 밀가루 개떡을 먹고 있는 저를 찾아내셨고, 첫날은 도시락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다음날부터는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얼마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몇 달 정도는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상하게도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자존심은 절대로 아니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이사를 가게 되었고, 역시 선생님께 마음을 보여드리지도 못한 채 전학을 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저는 비교적 큰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연수과정 중에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모 봉사시설에서 1주일간 무연고 노인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일이 빨라 조장이 되었고, 우리들은 각자 방 하나씩을 배정 받아 그 분들을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온전하지 못한 분들이었고,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잠들기 전, 그날의 일들을 얘기하는 중에 느꼈지만, 저는 비교적 수월했던 분들을 거들어 드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 날 밤에 조원 중에 한 명이 걱정, 한숨, 푸념, 불평을 연거푸 늘어놓았습니다. 창단식 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불평하지 않기로 선언했었는데 말입니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시는데, 이틀 내내 "똥만 싼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날은 설마했지만, 둘째 날도 여전하더라는 겁니다. 저는 조장인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방을 바꾸어 맡기로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찍 그 할아버지의 방으로 갔습니다.

    이미 많이 듣고 각오를 단단히 한 터였으니까, 충분히 괜찮을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려웠습니다. 정상인 시간이 거의 없고, 계속 말로만 듣던 치매증상을 보였습니다. 오전 내내 다섯 번쯤은 변을 닦아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빨래도 했습니다. 아무리 거역스러워도 며칠이면 모두 끝날 일이었습니다. 참을 수 있다고 여러 번 다짐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옷도 많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점심 때, 동료들의 얘기로는 나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습니다.

    오후에 할아버지를 목욕시키려고 안아 올리는 도중에, 그 할아버지가 전에 어디선가 뵈었던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닮은 사람도 있기는 하니까..."라고 생각을 접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자꾸만 더 "아는 분 같다"라고 느껴졌습니다. 힘들여 할아버지를 안고 오느라 궁금한 생각을 잠시 깜빡했었는데, 옷을 꺼내려고 할아버지의 짐을 만지다가 저는 우연히 할아버지의 성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전에 알던 이름이었습니다. 얼른 생각나지는 않아 머리를 갸우뚱거렸었는데, 옷을 가지고 할아버지에게 돌아와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본 순간 그만 제 몸에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건 꿈일 거야"라고 수없이 되뇌었습니다만, 절대로 꿈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국민학교 때, 매일 도시락을 싸주셨던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세상에 그런 만남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알아보시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찾아 뵐 생각도 못했던 제가 너무나 죄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이 늙어가실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하물며, 그렇게 치매에까지 걸리실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이셨고, 제게는 늘 옛날의 모습만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서러운 생각도 들었고, 무서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눈물 사이로 선생님께서 주셨던 도시락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너무나도 또렷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선생님의 배설물에서는 갑자기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짜증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이젠 진심으로 도와드릴 수 있었습니다.

     

    며칠간의 의무적 활동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봉사활동이 끝난 후에도, 저는 자주 그곳에 들러 선생님을 보살펴드리지만, 선생님은 한 번도 저를 알아보시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속의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생각을 잃으신 선생님께서 어떻게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앞으로도 자주 찾아뵙고 정성스레 보살펴드리면, 언젠가 제 이름을 부르시겠죠? 그리고는 서로 부둥켜 안고 실컷 울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 할 겁니다. "선생님, 그 때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따뜻한 마음과 꿈을 가슴에 지닌 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선생님, 꼭 마음을 찾으셔야 합니다.

    -----카톨릭 굿뉴스-----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한번의 탄생과 한번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온통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조금씩 나누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보험을 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적선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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