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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신 군자의 행동

2010. 2. 4. 16:32 | Posted by 계영배
"군자는 항상 언동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중함이 없으면 위엄이 없어 가볍게 보일 뿐만이 아니라 이런 사람은 비록 배움의 길에 들어서더라도 모래 위의 누각과 같이 헛될 뿐이다.
충실과 신의를 생활의 신조로 삼고 모든 언동을 이에 의해야 한다.
안이하게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사귀며 좋아하는 것은 금물이다."

시대와 무관하게 삶은 다람쥐 책바퀴처럼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과거가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되는 것은 현실이 힘들기 때문이지
결코 과거를 원해서가 아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과 대면하는 순간 물거품이 된다는 말이 있다.

공자께서 탄생하시던 시기는 전국이 어지러운 시기였고 역사적으로 기원전 552년에 출생을 하셨으니 시기적으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래전의 활동하셨던 분이시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속고 속이는 사기적인 삶은 만연했고 소인배들의 배신과 약육강식이 동물적인 본능이 인간사를 폭넓게 지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지금 보다 더욱 비참했던 삶이 존재했을지언정
결코 서로 돕고 인의를 삶의 본질로 삼는 인간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사람이 당신에도 문제였던것 같다.
충실이란 지금의 성실이라는 생각이 들고 신의란 믿음이나 약속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군자의 속성으로 충실과 신의를 내세우신 공자의 의도는 아마도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도 소인배나 사기꾼이 난무하고 실리를 쫒아서 움직이는 극단적인 무리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자신이 제자나 자신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군자의 길을 걷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요즈음도 사람이 문제라는 생각이든다.
기준을 낮추고 욕심을 버리더라도 포기하지 못하는 기준이 이 시대에도 있다. 아무리 양보해도 사기성이 몸에 배어있고 허위와 과장이 넘치는 것을 알고는 어울릴 수 없지 않은가.  어쩌면 삶이란 정말 괜찮은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서 하루하루의 삶을 기대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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